호텔과 찜질방..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 이광재 도지사
[이철호의 시시각각] 호텔과 찜질방 [중앙일보]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혹독한 ‘중앙 정치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인사청문회에서 각종 의혹에 호되게 시달렸다. 그러나 가장 신경이 거슬리는 대목은 스스로 툭 내뱉은 한마디였다. 그는 “도지사가 여관에서 잘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출장 때 하루 97만원짜리 고급호텔에도 머물지 않았느냐”는 추궁에 걸려들었다. 그동안 김 후보자는 ‘소장수의 아들’에 농고(農高) 출신임을 자랑했다. 총리로 지명된 뒤에도 서민 식당을 자주 찾았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는 안쓰러운 사연도 화제를 불렀다. 트위터에 계란프라이를 태운 안타까운 사진도 올렸다. 하지만 “여관에선 못 잔다”는 한마디로 물거품이 됐다. 자신의 서민적 이미지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말았다.
김 후보자와 비교되는 인물이 이광재 강원도지사다. 이 지사는 당선 직후 직무가 정지돼 관사(官舍)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호텔은 물론 여관에도 가지 않았다. 대신 춘천시 칠전동의 한 찜질방을 찾아가 잠을 잤다. 우리 시대에 찜질방이 무얼 상징하는지는 다 안다. 없는 사람들이 하룻밤을 청하는 곳이다. “정치적 쇼가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선거운동 때도 잘 곳이 없으면 자주 찜질방에서 잤다”고 짧게 답했다. ‘낮은 자세’에 관한 한 이 지사는 보통 고(高)단수가 아니다.
정치 세계에선 ‘스케줄도 메시지’라는 말이 있다. 어디서 누구와 만나는지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지난달 6일 이 지사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이날 오전 그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의 결의대회에 찾아갔다. 헤드 테이블엔 그의 자리가 없었다. 도지사 권한대행이 대신 앉았다. 내빈 소개 때는 맨 마지막에 호명됐다. 공식 사진 촬영 때도 중앙에서 밀려났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불편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정작 이날 저녁 가장 중요한 모임이 열렸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이 지사 등을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 초청했다. 여기에서 오간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내밀한 이야기는 일절 공개되지 않았다. 이 지사는 직무 정지 이후 “공식적인 자리엔 숨어 지내고,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스케줄도 그의 다짐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