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치..그리고 사회..

노무현 대통령님을 떠나보내며..

세미가 2009. 6. 1. 16:09

노무현 대통령을 떠난 보낸 후..

 

노무현 대통령님을 마음속에 깊이 묻었습니다.

 

 

 

 <이광재 의원님의 '꽃이 져도 그대를 잊은 적 없다' 현수막을 배경으로...>

 

7일간의 국민장이 끝났습니다.

 

지난 금요일 새벽 6시 발인을 하며 노짱님을 떠나 보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노란 비행기들이 가시는 길을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동이 터오르지 않은 새벽임에도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발인식.. 마지막 노대통령께서 봉하마을을 떠나고 계시는 모습을 보며..경향신문 5월30일 신문에 찍힌사진>

 

밤새, 차가운 공기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몸에도 많은 분들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외롭게 하기 싫었나 봅니다.

 

봉하 마을에 들어서면, 수 많은 만장들이 도로 양 옆을 채웠습니다.

 

7일간의 봉하 마을에는 햇살이 너무나 따가워 한 여름날을 방불케하는 더위에도 수 많은 조문 인파는 몇 시간씩 기다려 조문을 했습니다. 폭우처럼 내리는 소나기도 조문객들의 발길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늦은 시간 피곤한 몸도 조문을 오고 자하는 의지를 꺽을 수 없었습니다.

 

90세의 할머님도 5살의 어린 꼬마아이도 짧은 미니스커트의 아가씨도 예쁜 교복을 입은 학생들 할 것 없이 모두가 국화 한 송이를 마지막 가시는 길에 드리기 위한 마음은 똑 같았습니다.

 

7일간 봉하마을에는 100만 이상의 조문객들이 몰려왔습니다. 전국의 300여개의 분향소에는 500만명 이상의 조문객이 분향하였습니다.

크고 잘 차려진 국민장 분향소부터, 작은 경로당에서 차려진 소박한 분향소까지.. 그 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하나였습니다.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쓴 노무현 대통령께 마지막 인사는 참으로 가슴 아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당신은 내 마음속에 영원한 대통령입니다.”

“다시 당신이 태어나 이 나라의 바보 대통령이 되신다면, 저 또한 다시 태어나 당신의 국민이 되겠습니다.”

“권양숙 여사의 눈물을 닦아 드리겠습니다.”

노무현대통령님 당신의 미소, 당신의 꿈꾸었던 이상, 꼭 기억하겠습니다”

“제게 단 한분의 대통령이십니다.”

“너무나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들, 마음으로 쓴 글은 참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시청 앞 노제에 5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모였습니다. 그 따가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 노무현 대통령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하러 왔습니다.

 

그 곳에서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서를 읽었던 김제동 씨의 추모사가 생각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몇 줄 짧은 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고 했지만 우리가 신세를 졌습니다""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하셨지만 앞으로 받을 고통이 더 큽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하셨지만 우리가 기꺼이 나눠드리겠습니다."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은 좀 슬퍼해야겠습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하셨는데 우리 가슴 속에 심장이 뛸 때마다 잊지 않겠습니다""미안해하지 말랐는데 좀 미안해하겠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랬는데 스스로를 원망하겠습니다""운명이라 하셨는데 이 운명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하겠습니다. 작은 비석만 남기라 하셨는데 우리 가슴 속에 잊혀지지 않는 큰 비석 잊지 않고 세우겠습니다""마음의 뜨거운 열정으로 그 분을, 우리 가슴 속에 한 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대하겠습니다"

 

원망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정말 원망 스럽습니다.

 

마지막, 벼랑 끝까지 몰아간 언론이, 검찰이, 현 정부가 원망스럽고, 이제까지 방관하며 살아온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분들이 아마도 많았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가시는 길들.. 시청 광장, 서울역, 수원 화장장, 그리고 다시 봉하마을 정토원까지 수만명의 국민들이 함께 했습니다.

 

<정토원 앞에서..눈이 부은 얼굴..29일 정토원에서 봉사활동..> 

 

다시 봉하마을로 돌아오신 30일 새벽 1시30분, 봉하마을에는 수만개의 촛불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손에는 촛불을 한손에는 국화꽃을...

 

봉하마을 입구에서 정토원까지 십리가 넘는 길을 작은 촛불들로 이어갔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혼자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거라 생각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서를 보면 남아 있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원망하지 말라.. 남아 있는 분들의 슬픔을 가늠하셨던 것 같습니다.

 

요즘 논란이 많은 대통령님의 자살 시기와 경호원의 진술이야기에 대해서도 말이 참 많습니다. 그 경호원에게 대통령님께서 심부름을 시켜 정토원에 다녀 오라고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경호원이 옆에 있었더라면, 뛰어내리는 대통령과 함께 뛰어 내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경호원의 기본 수칙 중의 하나이니까요. 그 분을 살리고 싶었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뜻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또 한명의 소중한 목숨이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었던 그 한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지키고 싶었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따뜻한 배려 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님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너무나 감동 어린 조문 또한 많았습니다.

어린 아이 둘이나 유모차에 태우고 온 어머니, 5살된 손자 손을 잡고 몇시간씩 조문을 위해 기다리는 할머니, 어린 아이를 맡기고 봉사활동을 밤새 하고 온 아주머니, 불편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해 온 장애우분들, 고사리 손으로 국화꽃을 헌화한 유치원 꼬마들...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있기에 아직도 희망을 보고 사람사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바랬던 그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