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이다.
순국 100주년을 맞이해서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이야기 하고 추모한다.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신독(愼獨)’, 그리고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조그마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에서 유래하는 ‘신독’이라는 말은, 안의사의 삶을 진실되게 말해준다. 그분이 남긴 ”戒愼乎其所不睹'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간다.)“라는 글씨 역시, 이토 처단, 대한독립의 염원에 앞서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감추지 않으며, 그리하여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리는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딱 100년전 안의사 32세 사형선고가 내려졌으나 항소를 포기하고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서른두 해의 치열했던 생을 마감했다.
제2차 러일조약이 조인되었고 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 사이에 한일병합조약을 조인하였고 조선 총독부가 설치되었다.
짧은 생애 32년을 살았지만 영원히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살아 계실 분이다. 일본인 간수들 마저도 안중근 의사를 존경해 마지 않았다고 한다.
죽음을 며칠 앞둔 안중근 의사는 동생인 정근(定根)·공근(恭根)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返葬·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그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 장사를 지냄)하지 말라.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했는데 아직도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뤼순 어딘가에 묻혀 있을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니 참 가슴이 아프다.
그렇게도 바라던 독립을 원하셨는데, 이제 독립이 되어서 기쁘실까? 아님 하나되지 못하고 둘로 나뉜 분단된 조국이라서 마음이 아프실까??
어느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보고 계실까??
안중근 의사의 신독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조그마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 본다.
점심 시간 한나라당 당사 앞을 지나다가 안중근 의사 현수막 사진을 보게 되었다.
한나라당 당사 앞의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이다."
왠지 한나라당 당사에 걸린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불편해 보인다.
안의사의 정신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나는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이다."라는 현수막과 사진이 왜 이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안중근 의사와 요미우리 독도 발언 문제의 대통령, 근로정신대 할머님들께 99엔의 보상금에도 미동하지 않는 정부가 함께하고 친일 후손들이 많은 한나라당과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순국 100주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데 원하시던 조국이 독립되었지만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중국 어딘가에 묻혀 계시리라.
한나라당 당사 옆 벽이 아니라 진정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힐 국립묘지에 빨리 안장 되시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