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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18 묘역의 15살 소년의 비문과 FTA 날치기

세미가 2011. 11. 23. 14:47

 


한미 FTA 직권 상정 날치기로 국민들은 분노하고 의회는 정지되었습니다.


이 정권 들어 5번째 날치기입니다.


3년 연속 예산안 날치기, 4대강 공사와 언론악법 날치기에 이은 국제 비준인 FTA 5번째 날치기..직권상정 날치기 만행으로 국민의 의사를 무시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피흘리던 80년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 나라에서 말입니다.


주말에 광주 망월동 5.18민주화 묘역에 다녀왔습니다. 


15, 18살의 어린 고등학생의 앳된 사진과 비문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고등학생 어린 학생이 총을 들어야만 했던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비문에 새겨진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망월동 오월 묘지를 갈 때마다 눈물을 참을 수 없습니다.

80년 현장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남습니다.

 


15살의 김완봉 열사의 묘비에는 “15살 너의 죽음이 조국의 자유와 민주를 위한 값진 것이었음을 우리 모두 기쁘게 생각한다.”


“종필아 살아남은 자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아갈게. 너의 숭고한 죽음이 민주화에 길이 빛나리라.  너를 죽도록 사랑하는 아빠가”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그리고 형제 자매를 보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의 슬픔이 밀려옵니다.

 그 피와 눈물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1980년 광주의 현장에서 다시 서 있게 됩니다.


사진 속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시민들.. 그 분들을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서 박힙니다.


민주화를 위해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던 광주 시민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제삿날이 같은 날

우리들은 광주를 기억할 것입니다.

몇 백년이 흘러간 뒤에도

같은 날 과부가 된 어머니들과 절름발이 병신 애인을 가진 아가씨들을

역사는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야만 했던 그 시대처럼..


다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시민들에게 영하의 날씨에 물대포를 쏘는 경찰들과 80년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군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됩니다. 시민들을 19명이나 연행했다고 합니다. 그 시대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피 묻은 태극기를 보며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80년 그날의 그 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정말 그분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요?


3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들은 거리로 나섭니다.


아직도 민주화의 길은 멀고도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슬픔이 밀려옵니다.


국민들에게 진심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어제 국회의사당에서 체루탄을 던지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고 다시 체류가루를 뿌리는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현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나마 진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밖에서 FTA 통과 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현실에서 8-90년대 썼던 체류탄이 다시 나올 수 밖에 없는 지금은 80년 광주와 무엇이 다를까요?


FTA 날치기..민주주의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을사조약 마저도 절차는 지켰다고 하는데, 절차마저도 지키지 않은 국제 협약이 어떻게 효력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80년 광주에 서 있는 것입니까?


2011년 서울에 서 있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