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치..그리고 사회..

[의원님글] 짧은 생각 긴 글을 보냅니다.

세미가 2009. 5. 6. 13:42

 

 

[연탄나눔행사에서 말씀중이신 이광재 의원님] 

 

 

 

짧은 생각, 긴 글을 보냅니다.

 

생각 1. 멈춤의 지혜

 

제가 구속되고 강금원씨가 구속되는 걸로 끝나길 간절히 바랬고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 2. 오래전 말씀 - 예정된 일들

 

이런 일이 있기 아주 오래전에 어느 분이 제게 말씀 하셨습니다.

“심장이 죽어 가는데 오른팔이라는 사람이 자기 걱정해서 되겠나. 마음을 비우고 담담하게 대처하고 자신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소중하게 생각해라”

 

그때는 무슨 말씀인가 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 그 말씀 이셨구나.

 

생각 3.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네요.

 

따뜻한 애정이 넘치는 글과 편지들을 보면서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어린 유치원생부터 농부의 아내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 4. 상대성 원리

 

이제 이곳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면회 온 사람이 하는 말 “벌써 한 달이나 되었네”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드는 생각,

‘내가 힘들다고 세상이 멈추는 법 없고, 각기 자기만의 절실한 시간을 길게 혹은 짧게 느끼고 사는게 인생이라는 것이구나.’

 

생각 5. 만나는 것과 헤어지는 것

 

사람이 피할 수 없는 것 세 가지

태어나는 것, 죽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헤어지기도 어렵다.

국회의원 되는 것도 어렵지만 그만 두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 6. 처음 국회의원이 되는 날

 

평창에 투표하러 갔었습니다.

난생 처음 투표용지에 제 이름이 인쇄되어 있는 걸 보고, 낯설고 황당한 느낌이 들었지만, 차마 다른 이를 찍어줄 수는 없고 제 이름에 표시를 하고 나왔습니다.

 

왜 이리 마음이 편치 않는지....

어릴 적 반장 선거를 하면 후보로 나선 아이는 다른 아이를 종이에 써 넣었는데...

정치는 자기가 한다고 나서서 자기 이름을 찍는 행위를 하는 일이니까 욕을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선자 교부증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갔는데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해서 집사람과 차에서 기다렸던 기억.. 그때의 그 황당함.

 

‘결국 이렇게 해서 정치를 하게 되는구나...’

아주 기쁜 마음만이 있는게 아니라 삭막한 삶을 이제 시작하나? 도저히 이해 안 되시겠지만 둘이 앉아서 황당한 인생이 시작되는구나 했지요.

 

욕을 먹고 사는 운명, 이왕 시작하는 거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

강원도와 관계 되는 일, 지역구를 정말 일터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평소 국회의원 뱃지도 달고 다니지 않고 (이것 때문에 욕도 먹었지만), 골프도 6년간 안 쳤지요 (시간도 아깝고 신세지기 싫어서, 한쪽에선 아직도 재야 생각하냐, 좌파, 또 한쪽에선 운동 좀 같이 하자는데 건방지게...)

 

일이 하나씩 진척될 때마다 자식이 커가는 것처럼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기억도 많고 차츰 공사가 시작되고 성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며 많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겨서 만신창이 돼 버렸습니다.

 

생각 7. 학교 때 생각 그리고 나를 돌아보기

 

처음 이 일이 생겼을 땐 분해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찬물을 뒤집어쓰고...... (참아야 하느니라....)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들도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억울한 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풀어가면 되겠지...

큰 허물이 없으니 담담하고 냉정하게 풀어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덫에 걸려서 허둥대면 더욱 더 어려워지는 법...

 

또 한편으로는

내가 부족한 게 많구나. 문제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아보고

내가 고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꾸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으며

지금 나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생각 8. 미래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낙관을 가지고 살랍니다.

 

여동생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우리는 7남매입니다.

동생 말대로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 ‘부지런한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입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살면 되는 거지

백척간두 위에서 운명을 믿고 진일보...

 

대학시절 MT를 갔다가 후배가 물에 빠졌습니다.

허우적대며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선배 한 명과 나는 후배를 꺼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물이 빠져나가는 큰 구멍 앞에 후배의 몸이 빨려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양쪽에서 잡아 다니는데도 역부족이었습니다

“형 살려줘”하며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순간적인 망설임, ‘도망쳐? 따라가?.. 그래 따라가 보자.’

귀가 멍해지고... 그때 드는 생각, 내가 이렇게 죽고 마나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운명은 아니겠지...

잠시 후 다행히 출구는 있었고, 우리는 탈출했습니다.

 

그 기억은 나를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또 나를 아끼는 분들 (미워하는 이도 많지만)이 있으니 다 잘 될꺼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 9.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동계 올림픽 유치가 다시 시작되는 것

청와대에 있을 때 처음 동계올림픽이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국회의원이 돼서 동계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패하고 나서 많이 울었습니다.

반드시 해내야겠지요.

가난한 변방이 제대로 재탄생하려면 이루어내야합니다.

 

진폐 환자들이 이제 한 달에 적어도 50만원 가까이

또는 이상씩 받도록 제도 개선이 추진된다는 소식에

너무 기쁩니다.

아마 지역구내에 수 천 분은 될 것입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분들이

이제라도 부족하나마 대우를 받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영월에 동강대교가 완공되어 간다는 소식,

일들이 잘 진행된다는 이야기,

지역구 내 학교의 학업 성적이 아주 많이 올라갔다는 이야기

서울대 농생대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것

땀 흘린 결과들이 조금씩 나온다는게 다른 어떤 것 보다 저를 기쁘게 합니다.

나머지 일들도 이곳에서 부지런히 챙기고 있습니다.

 

생각 10. 서명운동에 대한 두 가지 마음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 안 된다는 서명운동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서 보통 국회의원이 그만 둔다고 하면 그렇고 그럴텐데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구름처럼 일고,

 

이 농사철에 서명 받으려고 노력한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에 사퇴하면 안 된다고 반은 협박, 반은 절절하게 쓴 글을 보고 마음이 천근만근 됩니다.

 

이 빚을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사마천을 보면, 더 강해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면서도, 수모를 겪으면서도 마침내는「 사기」를 썼다고 합니다.

 

세상은 물러날 때를 몰라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亢龍有悔(항용유회)

 

생각 11.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강원도는 제게 생명을 허락한 땅입니다.

태영평정은 수십년만에 찾아온 저에게 정치 생명을 주신 곳입니다.

지난 선거에선 ‘일 잘하는 이광재’를 선택해 튼튼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큰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생각 마지막 : 사진과 플래카드도 보았고, 글도 보았습니다.

 

편지들 많이 보내 주셨네요.

글을 다들 잘 쓰시네요.

마음으로 쓰니까 그런 모양이네요.

 

마음으로 쓰는 글은 아름답구나.

마음으로 쓰는 글은 전해집니다.

고맙습니다.

 

                        이광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