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례사
한수산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했던 주례사 내용입니다.
아주 존경했던 은사님이 아드님의 청이었기에 ‘주례는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하게된 한수산 선생님의 첫 결혼 주례사를 읽으면서 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례사’라는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어제밤 준비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는 젊고 아름다운 두 영혼에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먼저 오늘 결혼하시는 두 분께 마음으로부터 축하의 꽃다발을 얹어드립니다. 아울러 헌헌장부로서 이토록 늠름하게 신랑을 길러주시고, 눈부시게 곱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신부를 다듬어내, 우리 사회의 한 기둥으로 이루어주신 양가의 부모님께 축하와 함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 또한 결혼을 했고 아들딸을 낳아 길렀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아 그때 왜 그렇게 살았을까, 아 그때 왜 그걸 몰랐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여 첫발을 내딛는 젊은 청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도, 멀고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하며 가슴에 남는 이야기들을 몇 가지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결혼식에 가보면, 늘 주례는 말하곤 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십시오”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부부에게 “이제부터는 사랑하지 마십시오”하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랑하지 말라니, 도대체 결혼식에서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하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이제 사랑은 그만했으면 합니다. 오늘 결혼을 하는 이 두 젊은이는 사랑했기에 오늘 결혼합니다. 만나서, 서로를 알고, 가슴은 나누며 속삭여온 그 나날들 속에서 두 사람은 많이 사랑했을 겁니다. 이제 사랑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감동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감동이 아닙니다. 생활입니다.
젊은 날 읽었던 시가 하나 생각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젊은이가 사랑하는 여인을 처음으로 안고 들어온 날의 시입니다. 헤어져서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의 옷에 여인의 머리칼 하나가 붙어 있더랍니다. 그때 그 시인의 옷에 붙어 있던 머리칼은 단순한 머리칼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의 손으로 집어올린 그 머리칼은, 하나의 금빛 실이고 은빛 끈이었습니다. 이것이 산랑의 감동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칼이 늘 금빛 실이고 은빛 끈이라고 합시다.
그래서 이제 결혼하는 신랑이, 안방 장판에 떨어져 있는 아내의 머리칼을 집어 들고, 아, 이 금빛 실, 은빛 끈!”하고 감동한다고 합시다. 아내가 목욕을 하고난 욕조에 붙어 있는 머리칼을 보고 “아이 금빛 실, 은빛 끈!”하며 목이 메인다고 합시다. 이것은 결혼이 아닙니다.
사랑은 당신만 있으면 됩니다. 너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결혼은 생활입니다. 사랑할 때는 필요하지 않던 쓰레기통이나 전기밥솥, 부엌에는 행주도 필요한 것이 결혼입니다. 사랑과는 아무 관련이 없던 것들, 심지어 바퀴벌레 잡는 끈끈이나 고무 깔때기가 달린 화장실 뚫은 막대기까지 필요한 것이 결혼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젊디젊은 부부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사랑하지 말고 다만 서로를 좋아하십시오. 아내가 생머리를 했을 때는 그 생머리를, 파마를 하면 그 파마머리를 좋아하십시오. 아내가 커피빛 루즈를 바르면 그 색깔을, 핑크빛 루즈를 바르면 그 핑크를 좋아하십시오.
남편이 턱이 푸르게 보이도록 면도를 했을 때는 그 얼굴을 좋아하십시오. 그러나 어느 날 수염이 더부룩한 얼굴일 때도 “아, 야성적이네”하면서 남편을 좋아하십시오.
서로가 서로의 것을 좋아할 때 그것은 늘 두 사람의 생활을 하루하루 아침 햇살처럼 신선하게 밝혀줄 것입니다.
다음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영화 <조이럭 클럽>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그 영화에서 네가 원하는 사랑은 무엇이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딸은 대답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남편으로부터 받는 ‘존중과 부드러움(respect and tender)'이에요.”
‘존중’이란 서로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드러움’이란 서로를 아끼는 마음입니다. 아끼기에 늘 서로에게 부드러우십시오. 서로의 가치를 소중히 하기에 늘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십시오.
그리고 여기서 서양의 속담 하나를 떠올립니다. “쓰고 있는 열쇠는 항상 빛난다”는 속담입니다. 그렇습니다. 쓰지 않는 열쇠는 녹이 슬어버립니다. 지하실이나 창고처럼 어쩌다 문을 여는 열쇠가 반들거릴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쓰고 있는 열쇠는 반짝이며 항상 빛납니다.
아름다운 두 청춘에게 말씀드립니다. 언제나 서로에게 스스로가 쓰고 있는 빛나는 열쇠가 되십시오. 나는 너에게 항상 빛나는 열쇠가 되고, 너는 나에게 항상 빛나는 열쇠가 되면서 살아가십시오.
이제, 부부가 되어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의 나날이 두 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혼자서도 그렇지만 둘이 살아가는 일도 모든 이 땅 위의 삶이 그렇듯이 기쁨만은 아닙니다. 즐거움만이 있는 나날이 아닙니다. 어쩌면 하루하루 어렵고 힘겨운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때를 위해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늘 물을, 강물을 생각하십시오. 물은 높은 곳을 만나면 돌아서 흐릅니다. 웅덩이를 만나면 고였다가 흐릅니다. 강물을 보십시오. 산을 만나면 강물은 그 산을 넘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 산을 끼고 돌아서 흐릅니다. 깊은 수령을 만나면 고여서 넘치며 흐릅니다. 그러나 강물은 결코 흘러가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변함없이 아래로 아래로 흐릅니다.
이제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야할 두 분에게 늘 강물을 잊지 말라고 부탁드립니다. 어려운 산을 만나거든, 돌아서 가십시오. 힘든 수렁을 만나거든 서두르지 말고 고였다가 또 흘러가십시오.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살아봐서 압니다. ‘평화’만이 가정에서의 행복이었습니다. 많이 가진다고 해서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높이 오른다고 해서 그것 또한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남이 없는 걸 가졌을 때, 남보다 많이 가졌을 때 행복했다 해도 그것은 잠시였습니다. 평화로울 때가 가장 깊고 긴 행복이었습니다. 남보다 높이 오르고, 남이 오르지 못한 곳을 올랐을 때의 행복은 짧았습니다. 언제나 ‘아 이것이 행복이로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던 때는 나와 내 가족이 평화 속에 있을 때었습니다.
늘 평화로 가득한 가정을 이어가기 위해 애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두 분의 그 평화가 남들에게도 이웃에게도 전염이되는, 그렇게 그윽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이어가 주십시오.
이제 먼 길을 함께 떠나야 하는 두 젊은 영혼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도하면서, 주례사로 가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