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부산갈매기 노무현』
이광재의원님과 노무현 대통령님의 또 하나의 추억~ 부산 갈매기입니다.
<노무현 의원과 이광재 보좌관 시절>
「마음속의 영원한 대통령」, 이제 여러분이 지켜주십시오.
부산 갈매기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참 부산을 사랑했습니다.
95년 부산시장 선거 출마 때 일이었습니다.
여론조사에선 앞서도 부산 시장 선거 나가면 떨어질게 확실시 되었습니다.
그때, 서울시장 후보와 러닝메이트로 부시장으로 하자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부시장으로 계시다가 서울시장으로 나가시면, 안정되고 평탄한 길을 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NO" 였습니다.
“떨어지더라도 고향으로 가시겠다"고 했습니다.
“고향이 너무 어렵다.”
“부산을 살려 보고 싶다.”
“민주주의라는게 내가 잘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찍을 칸을 만들어줘야 한다.”
“서울부시장은 좋은 기회이나 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부산으로 가셨습니다.
여론조사에선 계속 앞서시다 떨어지셨습니다.
96년 총선거가 왔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특정 지역이 싹쓸이하는 이 구도를 깨야겠다.”
정치 1번지인 종로에 출마하셨습니다.
2년 뒤엔 종로 국회의원이 되셨습니다.
종로는 참 좋은 지역구였습니다.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어느 날 참모회의를 여시더니
“2000년 총선에 부산에 출마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그런 걸 두고 날벼락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우리 참모들은 절대 안 된다였습니다.
몇 년 동안 줄곧 떨어지는 원외인사,
그렇다고 누가 그 정신을 알아주지도 않는데,
또 떨어질게 뻔한데 필사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좌우격돌
“더 이상 토론하지 않겠다.
죽더라도 고향에서 죽고 살더라도 고향에서 살겠다.
정치인은 이상이 있어야 한다. 간다. 따라 달라.”
이상 끝이었습니다.
먼저 나간신 후 참모회의, 뭐 별수 있습니까.
“대장이 확고부동하니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종로를 뒤로하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열심히 했습니다. 미분양 사태로 어려움을 겪던
녹산공단 임대료 인하 등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냥 표만 얻으려 하지 않고 어려움을
해결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작목반마다 돌았습니다.
많은 뜻있는 국민들이 세 번째 도전을 지켜봤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앞 선 결과가 나왔습니다.
개표 당일 날 방송차량들이 왔습니다.
‘우리가 이기는 모양이구나.’
정치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구나 싶었습니다.
출구조사 시간이 다가오자
슬슬 방송차량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직감적으로 “또 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에서 세 번째 통곡이 있었습니다.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맨날 떨어뜨리기만 하는 고향에
이렇게 매달리는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댁에서 노대통령과 사모님, 참모들 술을 한잔 했습니다.
참 막막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선거 사무실은 패전 후의 상처만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이 때를 기회로 컴퓨터를 훔쳐간 일이 생겼습니다.
세상 민심이란게 이런건가?
노대통령을 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나, 또 도전해야지”
말이 안 나왔습니다.
안희정과 저는 만났습니다.
외상으로라도 현수막을 걸자.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라고
왕창 현수막을 걸어버렸습니다.
노대통령님의 말씀,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나”라는
글이 온라인에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몰랐는데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노무현의 세 번째 도전”에 삼삼오오 모여서 보신 분들
낙선을 보면서 많은 느낌들이 계셨던 것 같습니다.
“바보 노무현”이란 글들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급기야는 노사모라는 흐름이 국민들 속에 자발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죽어서 다시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들이 있었기에 대통령 후보도 되었습니다.
국민들이 있었기에 대통령에 기적적으로 당선되었습니다.
킹메이커는 국민이란 걸 느끼게 한 역사였습니다.
유세를 부산 가서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부산 롯데 호텔 앞 유세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맺힌게 많으면, 얼마나 마음에 사무친게 많으면
유세 중 “부산 갈매기” “동백섬”도 불렀습니다.
그때 우는 사람들 참 많았습니다. 웃고 울고 했습니다.
부산 갈매기
노무현, 사랑하던 고향에 영원히 왔습니다.
돈이 없어 학교를 한해 못 다니고
부일 장학금으로 부산 상고를 다니던 시절
자취방이 없어 교실에서 자다가 추워서
얼마나 이를 악물고 잤는지 이가 아파 며칠
밥을 못 먹었던 사람..
가난하게 사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정치 현장에선 고향에서도, 당에서도 주변인으로
살아가면서 신념으로만 견딘 사람
대통령이 되고나서도 모질게 힘들었던 사람
좋아하던 고향에
태어나신 곳에 영원히 오셨습니다.
강원도 사람인 저는
지역 갈등을 극복해 나간다는 신념도 신념이지만
자기 고향에 대해 저렇게 애착을
갖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힘들게 사셨기에 더 고향에서 사랑받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고향에 계신 여러분
부산 갈매기
노무현
“너는 나를 벌써 잊었구나”를 길바닥에서 마이크 잡고
목 터지게 외치던 그 사람 잊지 말아주세요.
이젠 여러분이 지켜 주십시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제 고향으로 영원히 돌아 가셨습니다.
고향을 사랑한 서민의 자식 여러분이 지켜주십시오.
“참다운 인간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참다운 인간은 영원히 사는 것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뜻대로 나라가 하나로 통합되길 갈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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