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희망이야기

할머니도 '행복'이라는 걸 아실까?

세미가 2009. 9. 3. 13:56

2001년 오마이뉴스에 할머니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8년전에 쓴 글..

 

 

할머니도 '행복'이라는 걸 아실까?

할머니는 점점 어려지고 있습니다
01.01.26 14:34 ㅣ최종 업데이트 01.01.26 16:03 김지숙 (kjs7004)

 

 

 

설 연휴 3박 4일 동안에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골집엔 할머니와 부모님 세 식구만 사신다.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와 육십을 바라보는 어머니. 그 어머니는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 병 수발에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가신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그 동안의 맘 고생이 절실히 드러났다. 갑자기 늘어난 주름살과 흰머리, 가슴이 아플 따름이었다.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는 해가 갈수록 아이가 된다. 지난 번까진, 그래도 막내 손녀는 알아 보셨는데 이번엔 막내 손녀도 못 알아 보셨다.

"할머니, 저 누구예요? 아시겠어요?"라고 물어보자, "누구요? 누군지 모르겠소"라고 대답하셨다. 한참을 있다가 그때서야 "지숙이냐" 하셨다. 다른 사람은 다 몰라봐도 막내 손녀 지숙이만은 알아 보셨는데...

둘째 새언니가 시골에 다녀 와서 이야기했었다. 전화가 오니까 할머니께서 전화기 옆에 앉으셔서 수화기도 들지 않은 채로 '지숙이냐? 지숙이냐?'라고 내 이름만을 부르시더라고...

그렇게 찾던 막내 손녀도 못 알아 보신다. 항상 할머니 옆에서 자고 할머니 옆에 있어도...

할머니께서 혼잣말을 하신다. "지숙이는 어디 갔다냐? 밥도 안 묵고 어딜 갔을까?" 하신다. "할머니, 저 여기 있잖아요. 저 누군지 모르겠어요?" 물어 보면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웃으신다.

아주 무뚝무뚝하고 애정 표현도 할 줄 모르셨던 할머니. 자식들에게 들지 않으셨던 회초리를 손자들에게 드셨던 무서운 할머니인데 유일하게 막내 손녀한테만은 매를 들지 않으셨다.

15년 전까지만 해도(초등학교 3학년때) 할머니가 세수도 시켜 주시고 손톱 발톱 다 깍아 주시고 옷도 항상 입혀 주시고 벗겨 주실 정도로 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는데...

그런데 15년이 지난 지금 이젠 할머니와 나의 입장이 바뀌어 버렸다.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대신 따뜻한 물을 세수대야로 떠 와서 얼굴과 손을 씻겨 드리고 머리도 빗겨 드리고 옷도 입혀 드려야 하고 틀니도 깨끗하게 닦아 드려야 한다. 할머니 방도 냄새 나지 않게 몇 번 닦아야 하고...

할머닌 아이처럼 이젠 사탕과 과자를 좋아하시고 얼굴과 손을 만져 주는 걸 좋아하신다. 이젠 점점 대화하기도 힘들다.

"할머니 저 보고 싶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어 보면 할머니는 "밥 묵었냐? 밥 묵어라"라고 이야기 하시고 "할머니 어디 안 아파요?" 물어 보면 "어디 갔다 왔냐?" 하신다.

아이처럼 바닥에 떨어진 먼지나 잡다한 게 다 입에 들어간다.
"할머니, 이것 먼지예요. 먹지 마세요"하면, "응, 안 묵어"하시면서 내가 안 본 사이 낼름 입에 넣어 버린다. 한두 살 먹은 아이처럼.

설 다음날 아침 할머니가 날 깨우셨다.
"지숙아, 밥 묵고 학교 가라"하신다. "할머니, 저 오늘 학교 안 가요" 그러니, 다시 "학교 안 가냐?"하신다.
"왜요?"라고 물어 보니 할머니 친정집에 가고 싶다고 하신다.
할머니 친정 집은 나의 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할머닌 학교에 가면서 친정 마을까지 바래다 달라는 것이다.

"할머니 친정집 가서 뭐하시게요?"
"여긴 우리 집이 아니어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 우리 아부지 엄매 있는 친정집 가면 내 맘대로 다 하고 막내 동생 수덕이도 봐야제."
눈물이 났다. 지금 할머닌 어느 시절의 기억 속에 머물러 계시는 걸까?

20년 전에 돌아 가신 어머니와 18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시겠다고, 그리고 막내 동생을 보고 싶다고. 18년 동안 할머니께선 한번도 친정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할머닌 어머니, 아버지 없는 친정 가서 뭐하시냐면서 한번도 친정엘 가지 않으셨다. 할머니께서 맏딸이라서 동생들이 항상 언니 누나를 보러 왔을 뿐.

그런데 18년 만에 할머니가 친정에 가고 싶으신단다. 왜 그리 눈물이 날까? 핏줄이라는 것은 정말 끊을 수 없을 만큼 끈끈한가 보다.


할머니 옷을 입혀 드리고 형부 차를 타고 엄마랑 함께 할머니의 막내 동생집에 모시고 갔다. 이제 60이 훨씬 넘어 버린 막내 동생 집으로(막내 할머니도 편찮으셔서 거동이 조금 불편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를 모시고 가야 했다).

막내 할머니와 할머니를 보자 눈물이 먼저 앞선다.
"할머니, 이분 누구신지 아시겠어요?" 물어 보자 "막내 동생 수덕이" 라 말씀하셨다. 할머니 눈에 눈물이 고였다.
두손 꼭 부여잡은 흰 머리가 가득한 두 자매의 모습. 엄마도 울고 나도 한참을 울었다. 이게 핏줄인가 보구나...

"어머닌 어디 있냐?" 물어 보신다.
"언니, 엄마 20년 전에 죽어서 산에 묻었는디..."
"그랬어" 할머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고 생각하셨을까?

눈에 눈물이 고이셨다. 그렇게 정신이 없다. 누구도 못 알아 보신다는 할머니.
"할머니, 우리 집에 가야죠?" 물어 보자 "동생 집에 왔는데 하루밤 자고 갸야제"하신다. 이젠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오신 것 같았다.

"할머니, 안 돼요. 여기서 똥이나 오줌 싸면 어떻게 해요? 막내 할머니도 편찮으신데..."

 


"나 똥도 안 싸고 잘 할 거여"라 하신다.
맘이 불안했다. 집도 아니고 혹 실수라도 하시면...
"할머니, 나 광주 갈 건데 나 못 볼 건데 그래도 여기서 잘 거예요?"
"그래도 하루밤 자고 갈란다" 완고하시다. 그래서 불안한 맘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맘이 무겁기만 했다.

할머니. 한 평생 행복을 모르시고 사셨던 분. 얼굴도 모르는 남편에게 17살에 시집 와서 20살에 아들 하나 낳으시고 평생을 홀로 사셨다. 생이별로 일본으로 20살에 떠난 할아버지는 40년 후에 돌아오셨다. 그리고 다시 떠나셨다.

그 긴 세월을 호랑이 같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많은 시누이들과 함께 시집살이를 하며 사셨던 할머니. 싫은 말도 좋은 말도 없이 서러움 한 모두 맘속에 담은 채로. 개가를 하라던 주위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그런 이야기하려면 두번 다시 내 집에 발 들이지 말라고 하면서.

며느리로서 어머니로서 평생을 사셨던 할머니. 한번도 행복한 아내, 여자의 일생은 없었다. 웃음도 울음도 없이 무표정으로 평생을 사셨던
할머니께 이젠 웃음만 행복만 드리고 싶었는데 이젠 나도 행복이 뭔지 웃음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가 되어간다.

난 두려워진다. 다음 달에 집에 가면 할머니는 또 얼마나 더 어린 아이가 되어 계실지... 이러다 이러다 영영 막내 손녀 이름도 모르고 낯선 사람 취급하시는 것이 아닌지?

할머니를 보면 난 많이 슬퍼진다. 여자의 일생에 대해서, 행복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