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희망이야기

“내가 너를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나 보다” - 이산가족상봉

세미가 2010. 11. 1. 10:02

이산가족 상봉이 10개월 만에 다시 재개 되었다.

이산가족 신청자 8만명 중 하루에 10명씩 돌아 가신다고 하신다. 이번에도 이산가족상봉 신청자 중 4분이 사망 또는 건강 악화로 참여하지 못했다. 96세 최고령의 이산가족상봉하시는 할머님은 목숨을 걸고 오셨다고 한다.

시간이 없다. 이제는 10대 꽃다운 소녀는 70대 할머니가 되어 가고, 30대 젊은 아버지는 90세 100세를 바라보는 연세가 되셨다.

 

이산가족상봉.. 한복을 입고 수십 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딸이 부둥켜 안고 통곡했던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슬피 울까? 그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산가족 상봉을 이야기 하면 항상 그 장면이 눈에 떠오른다.                  <이산가족상봉 1983년>

 (사실 그때는 너무 어려 이산가족이 무엇인지..왜 이렇게 사람들이 만나 우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사연들을 보면 참 가슴이 아프다. 기사를 볼 때 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린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런 경우는 없을 것 같다. 부모가 자식이 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을 할 수가 없어 살아계신 아버지의 제사를 60년 동안 지냈다는 사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이번 이산 가족 상봉자 중 남측 최고령자인 김례정 할머니는 96세이시다. 71세의 딸인 우정혜씨를 60여년 만에 만났다. 딸 우정혜씨가 10여살 때 헤어졌을 것이다.

 

그 어린 딸을 가슴에 품고 어머님는 꿈속에서만 딸을 만날 수 있었으리라. 아마 밤낮으로 잘때는 꿈에서 조차 잊지 못할 딸을 만난 것이다. 김할머니는 딸을 보고 “너를 어떻게…꿈에서만 보고…”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96세의 어머니와 71세 딸의 만남>

딸 또한 “한시도 어머니를 잊은 적이 없다”며 큰절을 올렸고 김 할머니는 “내가 너를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나 보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북측에 두고 온 어린 딸을 생각하니, 눈조차도 감을 수 없으셨던 것이었던 것 같다.

 

여동생 정혜씨에게 “금방 다녀올게”라며 등을 돌린 것이 내내 한이었다고 오빠 우영식씨는 말했다고 한다. 이 사연은 우원식 전 민주당 국회의원의 가족 이야기다. 김 할머니는 “노환으로 바깥출입이 불편하신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상봉장에 오셨다”고 말했다.

 

 

또한, 6·25전쟁 당시 세 살이던 남측 61세의 고배일씨는 북측의 아버지 81세의 고윤섭 씨와 개별상봉을 마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인 것 같은데 저승에서 영혼으로 만나면 아버님을 꼭 붙잡고 놓아드리지 않겠다”며 흐느꼈다고 한다.

 

고윤섭 씨도 울먹이며 “꼭 그러자”고 화답했다고 한다. 현실에서는 아버지를 붙잡을 수 없으니, 저승에서는 꼭 붙잡고 놓아드리지 않겠다는 아들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                                                         <눈물을 닦는 고령의 한 이산가족상봉자>

                                                         

치아가 안 좋아 음식을 먹을 수도 없는 아버지의 치아를 해 드릴수도 없는 이 현실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지 가슴이 아프다.

 

개별상봉에서 북측 오빠 79세의 정기형 씨는 남측에서 온 세 여동생의 큰절을 받았다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동생들은 전쟁 때 아버지 대신 북측으로 맨발로 끌려간 오빠에게 “모진 고생을 하게 해 미안하고 고맙다”며 오빠에게 양복과 털신과 가죽신 네 켤레를 선물했다고 한다.

 

60여 년 동안 동생들은 맨발로 끌려간 오빠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겨울이 되면 맨발의 오빠의 발이 시릴까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오빠에게 털신을 선물한 동생들, 출처:연합뉴스>           그래서 선물이 털신과 가죽신을 네 켤레를 선물했을 것이다.

 

 

<이산가족상봉, 앨범을 함께 보고 있는 이산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산가족상봉자들>

 

  

비극의 가족사가 아닐 수 없다. 60년 동안 생사도 확인을 할 수가 없는 가족이 전 세계에 어디에 있을까?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지난 이산가족 상복은 1년 11개월 만에 재개 되었고, 이번 이산가족 상봉은 10개월 만에 재개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딸 아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가슴 속에 한을 가지고 이 세상을 떠나시는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많이 있다.

 

자유롭게 연락을 당장 하기는 쉽지가 않더라도 최소한 이산가족상봉을 법적으로 정례화 시키는 방안들을 고려해 볼 수가 있다. 남북교류협력법에 이산가족상봉에 관한 법조항을 신설할 수도 있다.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고 흐르면 이산가족상봉의 자체의 의미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한분이라도 더 살아 계실 때, 만나고 연락할 수 있게 우리 모두가 노력을 해야 할 때이다.

96세의 어머니가 딸에게 한 말씀이 생각난다. “내가 너를 보려고 지금까지 살았나 보다”

 

<10개월 전 이산가족 상봉ㅇ자들, 이손 언제 또 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