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 처음으로 방문했던 2005년 겨울,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과 함께 북에 연탄을 배달하러 고성 온정리라는 마을에 처음으로 도착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아직도 70년대에서 멈춰버린 듯한 북한 고성의 마을과 금강산 호텔에서 만난 곱고 고운 안내하시는 분들, 붉은 글씨의 선동 문구가 낯설었지만, 그래도 북한 땅을 밟았다는 데 믿기지 않았고 가슴이 뭉클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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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연탄도 배달하고, 봄에는 금강산 슬기넘이 고개와 개성 봉동리에 잣나무와 대추나무를 심기도 하고,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고려박물관과 선죽교를 거닐기도 했습니다.
공식 만찬과 오찬에서 공산당 간부들과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그냥.. 우리 동포였고 이웃집 아저씨랑 이야기 하는 듯 편했습니다.
가끔 제가 쓰는 ‘드라마’ ‘탤렌트’ 이런 단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우리말을 왜 안 쓰냐고 타박하셨지만, 친절하게 이야기도 해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셨습니다.
매년 4월이면 금강산과 개성에 나무를 심으러 갔습니다.
붉고 붉은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주고 연탄을 배달했습니다. 묘목을 땔감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연탄을 배달하고 나무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남과 북 모두가 언젠가는 푸르고 푸른 산하가 되길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길고 긴 겨울이 더 길고 추운 북한 주민들이 조금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어느덧 7년 8년이 지난 지금..
금강산 관광은 벌써 몇 년째 중단되었고 개성공단은 잔류 인원 전원이 철수 한다고 합니다.
남한과 북한이 함께 만들어갔던 평화의 공간.. 금강산도 막히고.. 이제 개성공단 마저도 철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왜 뒤로 뒤로 후퇴하고 있는 것일까요?
개성공단의 입주자는 개성공단에 대해서 ‘북한의 땀’과 ‘남한의 가슴’이 만나 결실을 맺은 평화의 상징적 보루"라고 합니다. 1조원의 손실, 10조원 손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개성공단은 상품을 생산해 내는 그냥 수 많은 공단 중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남북이 평화를 위해 한 단계씩 이끌어갈 곳이었습니다.
이름표를 달아준 개성과 금강산의 잣나무와 대추나무는 7-8년이 훨씬 지난 지금 많이 자랐겠지요? 가을이면 대추와 잣이 주렁주렁 결실을 맺겠지요.
남과 북은 평화의 결실을 언제 맺을 수가 있을까요?
제가 심은 나무가 쑥쑥 자라듯이 우리의 평화의 장도 쑥쑥 커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시 금강산에서 개성에서 평양에서 남북이 하나 되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한 시간이면 갈 곳인 개성이.. 또 얼마나 멀리 멀리 돌아가야 할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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