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님의 『선비답게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옛사람을 보는 마을을 실었다고 했다. 옛 고서들을 통해 선비들의 마음을 다시금 느껴 볼수 있었다.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 있었다. <역사가 평가한 역적, 유몽인> 이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유몽인은 광해군의 신하 가운데 유일하게 절의를 지킨 신하라는 평을 들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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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평가한 역적, 유몽인
유몽인의 이런 처신은 한평생 굳게 지켜온 신념의 결과였다. 1623년 금강산에 머물고 있던 그는 반정 소식을 듣고 서울로 향했다. 보개산寶蓋山 영은암靈隱庵에 이르렀을 때 마침 언기彦耭와 운계 雲桂라는 시승 詩僧 둘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유몽인에게 “지금 새로운 성군께서 나라를 다스리게 되어 벼슬을 구하는 이들이 저자에 사람 꾀듯 몰려든답니다. 선생만 왜 길거리에ㅐ서 배회하는지요?”라고 물었다. 서둘러 조정에 얼굴을 내밀고 정권을 잡은 이들에게 눈도장을 받을 것이지 어째서 쓸쓸한 산속을 헤매고 있느냐는 핀잔 겸 충고였다. 유몽인은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늙고 망령든 사람이오. 지난해 금강산에 들어간 것은 세상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니라 산을 좋아해서였고, 올해 금강산을 떠난 것은 관직을 얻고자 해서가 아니라 양식이 떨어졌기 때문이오. 지금 이 산에 머무는 것은 산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식량이 흔하기 때문이오. 사물이 오래되면 신神이 들리고, 사람이 늙으면 기운이 빠지는 법이오. 6년 전에 미리 화를 피한 것은 신이 들려서고, 이익을 보고도 달려가지 않는 것은 기력이 노쇠한 때문이라오.
작년에 금강산에 머물렀던 것은 고상한 데가 있지만, 올해 야산野山에 들어온 것은 속된 데가 있소. 진흙탕에 뒹굴어도 몸은 더럽히지 않는 것이 결백한 행동이고, 먹을 것이 있다고 마구 달려드는 것은 비루한 짓이오. 내가 어디에 처해야 하겠소? 아무래도 재才와 부재不才, 현賢과 불현不賢, 지智와 우憂, 귀貴와 천賤의 사이인가 보오.
<遊寶蓋山 靈隱寺彦耭 雲桂兩僧序>
뒤집힌 세상을 만나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강인한 지조와 신념이 담긴 답 글이다. 자기 신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기개가 인상적이다. 그는 망령된 늙은이가가 정변을 틈타 출세를 꾀하는 추잡한 짓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늙은 과부가 재가를 거부한 심사가 느껴진다. 천지가 뒤집힌 세상을 만나 선비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그는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중립에 서려 했다. 글의 마지막 대목에 그런 의중이 담겨 있다. 더구나 먹을 것을 바라 마구 달려들지는 않겠다는 지조를 피력했고, 또 그렇게 실천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몽인은 광해군 시절에도 권세를 누린 인물은 아니었다. 당시 사족 士族들이 서로 편을 갈라 당파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개성이 강한 개인은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유몽인은 어디에도 빌붙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다. 이런 자신의 뜻을 글로 적어두기로 했다.
나는 혼자다. 오늘날의 선비 가운데 나처럼 혼자 다니는 자가 있는가? 홀로 세상을 헤쳐 가니, 벗을 사귈 때 어느 한편에 치우칠 리가 있겠는가? 한편에 치우치지 않으며 나머지 넷 다섯이 모두 나의 벗이 되나니, 나의 교유 범위가 넓지 않은가? 그들의 냉혹함이 얼음장 같다 해도 나는 떨지 않고, 그 뜨거움이 대지를 불태운다 해도 나는 타지 않는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이, 오직 내 마음 가는 대로 쫒아갈 것이다. 내 마음이 찾아가는 곳은 오직 나 자신일 뿐이다. 그러니 거취가 느긋하게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贈李聖 命分公赴京序>
편을 가르는 짓거리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과감히 밝혔다. 좋든 싫든 모두들 집단의 힘을 빌려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데 “나는 혼자다余獨也” 외치며 홀로서기를 하다니, 그런 용기를 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정치판은 그런 강직한 외톨이는 가만 놔두지 않았다.
유몽인은 광해군의 시정時政을 비판했지만 광해군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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