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사람들과의 추억..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

세미가 2010. 11. 22. 17:50


 

토요일 오후.. 북한산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순례길 구간.. 이준열사 묘역에서 솔밭근린공원까지..


순례길 탐방안내센터에서 지도를 받고, 통일 교육원 앞에서 순례길을 시작했다. 가을의 끝자락이라서 단풍이 많이 떨어져서 아름다운 단풍 구경을 덜 했지만 수북히 쌓인 낙엽으로 가을의 운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순례길을 시작하기 전에 이준열사 묘역을 먼저 들리게 되었다. 순례길 구간은 유난히도 열사들의 묘역이 많은 곳이었다. 4.19 열사 묘역까지 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시영 선생 묘소, 김병료선생 묘소,  광복군 합동 묘역 묘소 등 표시판을 많이 볼수 있었다. 둘레길 표시판 보다도 열사들의 묘역 표시판이 훨씬 많은 둘레길 구간이었다.


제주도 올레길은 빨간색 페인트로 화살표를 표시해 두었는데 둘레길은 나무로 된 표지판이 곳곳에 붙여져 있었다.


순례길 구간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본 것은 이준 열사 위훈비였다.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고종의 친서와 신임장을 전달하려 했으나 일본의 반대로 실패하자 스스로 자진했다는 내용들이 비에는 적혀있었다. 학교 다닐때 배웠던 역사 교과서가 다시 새록새록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묘역 앞에는 자유 평화 수호의 상이 있었다. 북청군민회에서 기증을 해서 보수를 했다는 안내도 있었다. 

 


묘역 가는 길.. 수북히 쌓인 낙엽들이 운치가 있었고 가는 길 가에는 이준 열사의 말씀들이 적혀져 있었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위대한 사람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라는 말씀도 이준 열사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많이 들었던 말인데 이준 열사 말씀이라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위대한 사람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이다. 땅이 크지도 않고 인구가 많지도 않은 우리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준 열사 묘역을 도착했다. 묘역 아래에는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고 옆에는 네델란드에서 기증한 비가 있었다.


이준 열사 묘역을 다시 돌아나와 순례길 본 구간을 걷기 시작했다. 작은 다리를 건너 산길로 걸기 시작했다. 작은 텃밭에 심은 배추도 보였고 계곡도 보였다.


산길에 난 오솔길들을 따라서 굽이 굽이진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참 걷다 보니 처음 출발했던 통일 전망대가 막 눈 앞에 보였다. 일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둘레를 돌아서 돌아서 가는 길의 묘미가 있었다.


길을 걷다 보니 계단 길도 있었고 흙길도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구간은 줄을 서서 걸어야 하는 길도 있었다.


둘레길을 걷는 또 다른 묘미는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고 많은 생각을 하면서 걷는 것이다. 등산을 하다 보면 단지 정상만을 위해서 무조건 앞만 보고 갈 때가 많다.

 

 

 

 


광복군 합동묘소를 들렀다. 독립 운동을 하다가 순국하신 애국선열 18위의 합동묘소였다. 1967년 광복군 동지회에서 조성하였고 1985년 국가보훈처에서 단장했다고 한다. 끝내 독립을 보지 못하고 멀리 타국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애국 열사분들이 조국으로 다시 돌아오신 것이다. 국가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오신 애국선열분들은 현재의 우리나라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다.


 그 다음 본 곳은 초대부통령 이시영 선생의 묘였다. 이시영 선생은 독립 운동가였고 임시정부 법무․재무 총장을 역임하셨고 이승만 대통령 통치에 반대하여 부통령직을 사직하셨고 1953년 부산 동래에서 서거하셨다.


이시영 선생의 묘역은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고, 묘역을 둘러 본 후 바라보는 가을 풍경이 아주 멋져 보였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니, 보광사 가는 푯말이 보였다. 보광사는 신식 건물의 절이었고 아주 컸다. 보광사를 따라 길을 내려가다 보니, 바위가 있는 곳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김밥과 과일 막걸리 떡 등을 먹으면서 쉬었다.


식사와 휴식을 마치고 보광사를 둘러 보았다. 보광사 대웅전의 문살 무늬가 인상적이었다. 예쁜 문살무늬 사진을 찍었다.

 

 

절을 둘러 본 후, 다시 순례길을 걷기를 시작했다.


국립 4.19 민주 묘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정부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 시키면서 영구집권을 꾀했던 이승만과 자유당정권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의 출범을 보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4.19 민주 묘역을 보고 난 후 둘레길 마지막 길은 흙길로 된 고즈넉한 길이었다. 흙길의 감촉을 느끼면서 둘레길 걷기를 마무리 했다.

 

 


내려와서 솔밭 근린 공원을 산책했다. 소나무 공원은 마을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할아버지들께서 바둑과 장기를 두시고 산책 나온 할머니들, 아이들과 놀러나온 주부들까지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의 모습이었다.


둘레길 1-2코스를 걷고 싶었지만 2코스 순례길 구간 밖에 가지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한번에 한코스씩 꼼꼼히 보고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둘레길.. 천천히 천천히..걷고 느끼고..보는 맛이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