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치..그리고 사회..

5.18 무명 열사분들을 기억해주세요~

세미가 2011. 5. 18. 17:55

 

5.18 이름 없이 떠나간 무명 열사분들을 기억해 주세요.


5.18 묘역에 처음 같던 날을 기억한다.

대학 1학년.. 기계공학과라는 특수성 때문에 여학생이 거의 없었던 과에서 학생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과 편집부 선배가 편집부를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다.


별로 고민을 하거나 선택의 여지 없이 그냥 편집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첫 번째 임무가 김남주 시인의 ‘조국은 하나다’라는 책을 읽고나서 감상문을 쓰는 거였다.

 



.....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사나운 파도의 뱃길 위에도 쓰고

 바위도 험한 산길 위에도 쓰리라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이제 쓰리라

 인간의 눈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맨 처름 보게 되는 천장 위에 쓰리라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밥 위에 쓰리라

 쌀밥 위에도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쓰는 모든 말 위에

 조국은하나다라고                                                               <김남주 시인 묘를 찾은 송두율교수>

 탄생의 말 응아 위에 쓰리라 갓난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위에 쓰리라

 

 저주의 말 위선의 말 공갈협박의 말…

 신과 부자들의말 위에도 쓰리라

 악마가 남긴 최후의 유언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

김남주님 조국은 하나다 중..



 



사실 그때 책을 읽으면서 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엉터리 같은 후기를 썼던 것 같다. 후기를 쓰고 직접 김남주 시인의 묘역 사진도 찍기로 했다.

 

 

 

선배들이 토요일 날 어딘가를 가자고 했는데.. 그 곳이 망월동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김밥 싸들고 소풍 가는 기분으로 간 곳이 망월동이었다. 그때까지는 신묘역은 없었고 구 묘역 뿐이었다. 수 많은 묘역들과 비석 그리고 사진들.. 이름이 익숙한 강경대 박승희 열사의 묘역과 김남주 시인의 묘비.. 그리고 익숙한 열사들의 묘역 옆에는 많은 종이학과 편지 그리고 술과 담배와 꽃이 장식 되어 있었다. 신문과 TV에서 자주 보았던 웨딩드레스 입은 새신부의 사진과 어린 꼬마 아이가 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은 아주 익숙한 사진이었다.


아무도 찾지 않은 무명 열사의 묘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충격이었다. 그냥 말로만 듣던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구묘역 입구에는 전두환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 비석은 전두환 대통령이 담양의 한 마을에 민박을 한 기념으로 새겨놓고 간 비석인데 그것을 부수어 입구에 누여 놓았다. 묘역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밟고 가라는 뜻이었다.

 

 

망월동에서의 5.18 열사들과 그 후에 망월동으로 안장된 많은 열사들과의 만남은 이유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고 왔던 기억 뿐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비석, 형체을 알아보기 힘들다>


그 후로도 광주에 살때는 5월이 되면 망월동에 찾아 갔다. 국화꽃 한송이씩 들고 가서 놓고 싶은 열사 묘역에 놓고 오곤 했다. 신 묘역은 공원처럼 잘 꾸며놓아서 인지 구 묘역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신묘역은 각 비석 뒤에 쓰여진 열사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읽는 것 빼고는 특별한 느낌이 없었던 것 같다. 가족들과 지인들이 써 놓은 그 비석의 문구는 가슴을 울린다.

 

<신묘역의 묘비 사연>                 <먼지 쌓인 구묘역 묘비>


 

꾸밈 없이 초라한 모습이지만 구묘역이 더 마음이 간다. 구묘역은 먼지하나 닦아줄 사람이 없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난다. 


나는 늘 무명 열사들의 묘역에 국화꽃을 놓곤 했다. 이름도 찾을 수 없는 무명 열사..


그 시기.. 구두를 닦던 분들.. 쓰레기를 줍고 살았던 분들.. 가족 없이 힘들게 살았던 그 분들은 이름을 찾아줄 가족 마저도 없이 그냥 무명 열사라는 묘비 아래 누워 계시는 상황이 더 안타까웠다.


늘 기일이 되면 찾아와 주는 널리 알려진 열사들과 가족이 있어 그날을 기억해 주는 열사들과는 다르게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무명열사.. 그 분들이 안타까웠고 가슴이 아팠다.


묘비에 언제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흔적 조차 없는 무명 열사의 묘역에 오늘은 누가 국화 한송이를 놓아 드릴지 모르겠다.

<무명열사의 묘에 성묘하는 손학규 대표, 출처:뉴시스>

5.18 구 묘역 .. 그 곳에 무명 열사의 묘역에도 국화 한송이를 놓아 드리고 누군가가 그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해 주시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