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책 그리고 인생

써니.. 낡은 앨범 속의 사진을 보는 듯한 영화

세미가 2011. 5. 30. 14:57


주말에 오랜만에 대학 동기인 친구랑 영화를 봤다. 극장에 간 게 몇 달 만인 듯하다.
그 친구는 써니라는 영화를 봤지만 또 봐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재밌게 봤던 과속스캔들의 감독이었던 강형철 감독의 작품이라고 한다.

  

 

 

써니라는 영화는 현재 42살의 주부들의 여고생 시절과 현재를 오가며 진행된다.

80년대 후반, “빙글 빙글”이라는 노래가 유행이었다. 그 가수인 나미씨와 이름이 같은 임나미(심은경, 유호정)라는 벌교에서 전학 온 어리숙한 학생과 학교 짱이고 의리를 중시하는 쌈장 같은 하춘화(강소라, 진희경) 두 사람은 가수와 이름이 같다는 공통점이 있다.

 

 

7명의 여고 동창들의 추억 회상 장면을 보면서.. 초등학교 시절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7명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있다. 하춘화와 임나미, 예쁘지만 차가운 매력을 가진 수지는 잡지 모델이기도 하다. 김장미는 늘 통통하고 늘 쌍커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욕배틀의 최고봉 황진희, 청순해 보이지만 한 성깔 하는 교수집 딸 금지옥엽 금옥, 사차원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미용실 집 딸 복희..이렇게 7명은 여고 동창생이다.

 

 

친구들이 집에 모여서 춤도 추고 노는 장면을 보면서 초등학교 소풍 장기자랑 준비로 김완선의 오늘밤이라는 노래와 안무를 우리 집에서 모여서 준비했었다. ‘나오늘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무심한 밤새소리 구슬피 들려 저하늘 둥근달이 외로워 보여요 작은별 속삭임도 부질 없어요 ~ ’ 이 가사에 맞춰 5명의 친구는 매일 모여 안무 준비도 했었고, 주윤발이 광고 했던 사랑해요~ 밀키스, 티파니의 흔들어 주세요~ 오오오 오란씨.. 따봉~ 이런 광고를 따라하며 장기자랑 준비도 했던 기억이 난다.

소녀시대파와 칠공주파의 싸움 씬도 인상적이었다. 욕설 배틀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각기 맡은 파트별로 싸우는 친구들.. 보면서 초등학교 4학년 때가 생각났다.

 

 

 

우리 마을 친구들 5명과 다른 마을 친구들 5명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때 나름 라이벌이었던 것 같다. 하교 길에 그쪽 마을 아이가 전투(?) 비슷한 걸 신청했던 것 같다. 다음날 점심 시간 때 학교 뒷동산에서 5명이 일대일로 마주섰다. 내 앞에 섰던 친구는 키는 작지만 아주 야무진 친구였다. 순간적으로 이 친구랑 싸우면 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화를 시도했다. 왜 우리들이 싸워야 하는지 대화를 해보자. 단 욕설과 폭력은 쓰지말자. 상대방 친구는 어이 없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내가 그렇게 나오자. 대화를 하자는 분위기였는데.. 순간 양 옆의 다른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싸우다가 싸움은 끝났다. 왜 싸웠는지도 모르는 채.. 구경 나왔던 남자 친구들이 유일하게 싸우지 않았던 나에게 왜 너는 안 싸우니? 라고 물어봤을 때, 나는 평화를 사랑해..라고 말했었는데.. 사실은 싸움을 해보지 않았던 나는 괜히 싸우다가 맞을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 아이러니 하게도 그때 내 상대였던 친구는 동창생 중 가장 일찍 결혼을 했고 20대 초반 그 친구 부케를 내가 받았던 기억이 난다.

 

중간 중간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설마.. 아니겠지.. 라는 대사가 나오기가 무섭게 설마가..진짜가 되어버리는 드라마 내용도 웃음을 선사하고, 여고시절 회상 속의 에피소드들과 80년대 후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대학생들과 막는 전경들.. 그 사이에서 칠공주파와 소녀시대 파의 싸움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주면서도 무겁지 않았다. 내가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광주에 올라오면 늘 전경들이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방패를 들고 서 있는 전경들의 모습.. 그때는 참 그 사람들이 나이도 많고 무섭다고 느껴졌는데, 지금은 전경들이 어린 동생처럼 안쓰럽게 느껴진다. 군인들이 어리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나이가 들어감을 느꼈다.

 

운동권 오빠 때문에 형사들이 집에 찾아오는 장면을 보면서 어린 시절 외가인 제주도에 갔을 때 제주대 학생회 간부였던 외사촌 오빠를 잡기 위해서 형사들은 쫒아가고 오빠는 집 뒤 밭으로 도망가는 장면이 생각났다. 유난히도 사촌오빠 책상 아래는 소주병이 많았는데, 그게 화염병 재료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나는 사촌오빠가 참 소주를 좋아하는 줄 알았었다. 결국은 그 사촌오빠는 형사에게 잡혔고 이모와 엄마가 재판 때 마다 울면서 쫒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전대협, 한총련 운동권이었던 사촌오빠들에 참교육 전교조 세대의 언니 덕에 소위 말하는 운동권 노래와 영화 속의 장면이 아주 익숙했다.

 

 

영화 속의 또 하나의 재미는 나미의 집 가족들 이야기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걸죽한 전라도 욕설도 인상적이고, 운동권이던 오빠와 독재 시절에 공무원인 아버지.. 말도 많고 드라마에 빠져 있는 어머니까지.. 등교시간 마다 전쟁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미와 엄마의 모습과 현재 엄마인 나미와 딸의 생활이 오버랩 된다.

영화 써니는 20년도 훨씬 넘어버린 후에 여고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가며 잃어버렸던 자아를 찾아가고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아련한 첫사랑도 기억하고, 서로에 대한 아픔도 기억해 낸다. 그리고 친구 한명 한명을 찾으면서 아픔도 알아가고 여고시절의 추억과 의리도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80년대 들었던 친근한 가요와 무드 팝송을 감상 할 수 있어 좋았고, 80년대 청자켓과 지금은 촌스럽게 보이는 머리스타일과 패션도 친근했다.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친구들과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지금 그 친구들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모든 사람들에게 써니와 같은 친구들이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써니와 같은 친구들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대학시절까지 써니와 같은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친구들과 연락이 되는 친구도 있고 연락이 안 되는 친구들도 있다.

 

써니.. 낡은 앨범 속의 사진을 보는 듯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