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 시고 쓰고 짜다 인생의 맛이 그런거지
아, 사랑하는 나의 당신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나는야 노래하는 사람
당신의 깊이를 잴 수 없네 햇빛처럼, 영원처럼“
- 소금 -
10월 말 문화 특강에서 박범신 작가의 강연을 들었었다.
청년 작가 박범신.. 은교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박범신 작가 강연을 듣고 헌책방에 가서 80년대 박범신 작가의 소설<흰소가 끄는 수래> <풀잎처럼 눕다>를 사서 읽어보기도 했고, 수필을 읽어 보기도 했다.
한참 전에 사 놓고 읽지 못했던 “소금”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소금.. 세상에 빛과 소금.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것인데.. 평소에는 소중함을 모른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런 면에서 소금과 닮았는지도 모른다.
소설 소금에는 아버지, 세상의 많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금 속의 많은 아버지들.. 염부로 평생 희망인 자식하나를 위해 평생을 받친 아버지.. 평생을 아내의 자녀의 통장처럼 살아온 아버지.. 아픔으로 남은 아버지.. 아버지가 절대 되기 싫었던 아버지..
많은 아버지.. 그 속에 기억 속의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평생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한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인 나의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할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일본으로 떠나셨다.
그 때 할머니 나이가 20살이었다. 아버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아버지라는 말을 못해 보고 자랐을 거라는 생각을 이제야 했다. 할머니는 홀로 아버지를 낳았고 키우셨다. 아빠가 어릴 적에는 증조할아버지가 살아 계셔서 그나마 나았지만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홀어머니의 아들로 자라며 많은 설움 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특히나, 의지할 형제들도 없었으니 많이 외롭게 자랐을 것이다. 울타리 없이 자란 아버지의 삶이 어떠했을까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자식 욕심도 많았고, 자식에 대한 사랑도 유독하셨다.
우리 형제자매 2남 2녀였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큰소리도 내시지 않으셨지만 늘 엄한 아버지셨다.
가끔 개구쟁이 오빠들에게 할머니가 회초리를 들 때가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할머니께 왜 손자들을 때리시느냐 화를 내신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회초리를 맞는 것도 못 참으셨고 심지어는 오빠들에게 맞고 올거면 무조건 때리고 오라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겠다고 했다.
아주 엄하시면서도 깊은 정을 보여주었던 아버지.. 특히나, 막내딸이었던 나에게 아버지는 하염없이 관대하고 많은 사랑을 주셨다. 초등학교 다닐 때 내내 육성회장을 하시고 가정방문 오는 날은 교장선생님과 모든 선생님들 모셔야 식사도 대접했고 소풍 때도 선생님들 도시락을 준비했고 아버지께서 직접 따라오셨다. 그때는 아버지 덕분에 선생님께서 특별히 예뻐해 주셨지만, 특별히 주목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아버지의 큰 관심과 사랑이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 형제들이 모두 광주 서울로 공부하러 또는 직장을 찾아 떠난 이후로는 우리들이 고향집에 오는 날이면 아버지께서 직접 차 타고 배를 타고 읍내 장에 나가셔서 장을 봐 오시곤 했다. 냉장고 마다 먹을 것을 꼭꼭 채워 놓으시곤 엄마는 먹을 수도 없게 했다고 한다. 우리들을 먹여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앞에서는 한 번도 그런 내색을 안 하셨던 아버지다.
<손자 손녀 아들 딸 모두 함께한 생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아버지께서는 울타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황량한 벌판에 홀로선 나무처럼 혼자서 비바람을 맞았던 설움이 있으셨던 게 아닌가? 아버지의 자녀들에게는 아버지가 받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을 원 없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그리 갖고 싶어했던 울타리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 나름의 사랑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다.
열매부터 마지막 나무 밑 둥까지 내주는 나무처럼..
자식들에게 마지막 수액까지 다 빼서 준다. 그게 바로 아버지다.
그러한 수 많은 아버지들이 설 자리가 사라져가고 있다.
<편찮으셨던 아버지는 막내딸 결혼식장에 손잡고 못가실것 같다고 하시면 열심히 운동을 하셨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아주 크게만 느껴지던 아버지는 자녀들이 크면서 점점 작아지셨다.
가장의 권위와 아버지의 자리보다는 엄마의 자리가 커졌고, 늘 딸과 아들 며느리 속의 엄마와 홀로 신문을 보거나 옆집 아저씨와 바둑이나 장기를 두시는 아빠는 외로워보였고 아버지 어깨가 아주 작아지는 듯 한 느낌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을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떠나셨다.
소금 속의 아버지는 가정을 떠나 유랑을 떠났고 나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그 곳으로 떠나셨다.
소금을 읽으면서..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 시대의 아버지와 아버지....
그립고 그리운 그 모습을 그려본다.
이 세상에는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의 맛은 달고 쓰고 시고 달다. 우리네 아버지의 인생처럼...
<아버지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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