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치..그리고 사회..

[노무현대통령&이광재의원] 감동은 기적을 만든다.

세미가 2009. 8. 14. 11:38

 <우통수의 꿈 중에서, 감동은 기적을 만든다.>

 

 

 

감동은 기적을 만든다.

 

감동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의 에너지는 잉걸처럼 이글거린다. 각질화된 감정을 뚫고 감동을 끌어내는 방법은 단 한가지다.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실은 감동에 불을 지핀다.

 

감동이 있는 정치는 가능하다. 나는 평소 소낙비처럼 시원한 정치 이벤트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이벤트를 노무현 의원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2000년 총선에서 낙선한 노무현 의원에게 보내는 국민들의 박수갈채는 열광적이었다.

그것이 새 정부의 내각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김중권 의원이 여당의 대표가 되면서 차기 대권 후보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때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김중권 대표를 향해 일침을 놓았다.

 

“기회주의자와 연대는 하되 모시지는 않겠다.”

 

노무현 장관은 구설수에 올랐다.

2001년 3월 해양수산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인제 의원과 김중권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노무현 의원은 물밑으로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노무현 의원은 새천년민주당 상임고문과 최고위원으로 다음 해에 있을 경선에 대비했다.

경선에서 승리해야 대권 후보가 될 수 있다.

드디어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이 시작되었다.

참모진은 노무현 후보를 위한 다음과 같은 전략을 짜두었다.

첫째, 경선 후보가 TV 토론 등에 나갈 때 뼈대 있는 내용을 준비한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상대를 비방하거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

구태의연한 토론 방식이다.

나는 노무현 후보가 정책적인 내용을 발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둘째, 경선 자금이 모자라기 때문에 제주, 울산, 광주에 전력투구한다.

새천년민주당의 경선은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에서 시작했다.

지역마다 대의원을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을 하려면 자금이 작지 않게 든다.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 1등으로 몰고 나가야 한다.

그 상승무드를 타야 후반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

 

셋째, 맨투맨 방식으로 사람을 감동시킨다.

대의원을 상대로 한 맨투맨 선거 전략을 짰다.

최고위원 경선 때도 이 방법으로 큰 효과를 거뒀다 세몰이 방식으로 대의원 개개인을 직접 찾아 발로 뛰는 것이 그들을 감동 시킬 수 있다.

경선 후보 등록을 할 때, 노무현 후부에게는 등록비 1억 5천만 원이 없었다.

등록 마감일이 눈앞에 닥쳤다.

참모들은 모자라는 돈을 채우기 위해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았다.

경선 비용이 별로 없어 참모들이 다리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는 미국의 뉴햄프셔와 같다. 나는 경선을 먼저 치르는 지역인 제주도 담당을 지원했다.

초반에 승기를 잡자는 전략을 내놓은 당사자로서 입에 침이 말랐다.

한화갑 후보는 당내 기반이 단단했다. 이인제 후보는 대세론을 업었다.

정동영 후보는 제주도에서 한 달간 발로 뛰었다. 모두 막강한 경쟁자였다.

 

시간이 갈수록 속이 바싹 탔다. 그래도 희망의 끈이 보였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같이 제주도로 무전여행을 왔었다.

그 경험이 도움이 될 줄 어찌 알았으랴. 숨은 인연들이 나타났다.

제주도 탑동 해산물 산지를 매립할 때였다.

해녀들이 생존권 위협을 느껴 국회로 와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제주 4.3사건 이후 가장 큰 시위였다.

그때 나는 해녀들을 위해 국회의원 사무실에 자리를 마련해서 각종 탄원서를 만들고 방송사와 신문사에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가 경선 때문에 제주도에 갔을 때 그 해녀들이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그 다음으로 나서서 자기 일처럼 선거운동을 해준 사람들은 택시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노조활동을 할 때 노무현 의원으로부터 무료번호를 받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는 정말이지 공짜가 없다. 베푸는 만큼 돌아오기 마련이다.

 

자기를 위해 살아온 사람이 있고 남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제주에서 경선을 치르며 나는 절감했다.

노무현 후보의 역정이 누구를 위한 삶이었는지 알았다. 또한 인연의 소중함에 놀랐다.

드디어 경선 하는 날, 모든 노력이 끝났다.

나는 삼방사에 가서 기도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그분을 도와주세요.”

내 입에서는 같은 말만 되풀이되어 나왔다.

제주도 경선 결과 한화갑 후보가 1등을 했다.

이인제 후보가 2등, 노무현 후보는 3등이었다.

이인제 후보와 노무현 후보의 표 차이는 비등했다.

이인제 후보는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제주도에서의 초선 경선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그 후 노무현 후보는 울산에서 1등, 광주에서 1등을 차지했다.

종합 1위로 부상한 것이다. 울산 경선 직후 김근태 후보가 사퇴했다.

광주 경선 직후 한화갑 후보가 사퇴했다.

 

광주에서의 선전은 노사모의 활동이 주력했다. 경선 하루 전, 광주시 충장로에서 노사모의 촛불 행진이 이어졌다.

그러자 광주 대의원들도 노무현 후보를 적극 밀었다.

이인제 후보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노 후보는 광주에서 1등을 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충청도에서 큰 표차로 이인제 후보에게 밀렸다.

이인제 후보 측에서 경선 포기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대의원들이 경선을 계속하려고 그를 밀어야 한다는 분위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경선은 대전과 충청도를 거쳐 강원도로 넘어갔다.

나는 강원도 출신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쪽을 다시 자원했다.

이인제 후보는 강원도에서 마지막 대공세를 펼쳤다.

나는 바짝 긴장이 되었다. 강원도 전역을 돌아다녔다.

경선 당일 기자들의 분위기는 이인제 후보가 이긴다는 쪽이었다.

 

강원도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는 ‘노무현 후보의 장인 좌익 활동을 했다’라는 공세를 퍼부었다.

색깔공방으로 간 것이다 상대 후보를 비하하는 거시곤 구태의연한 전술이었다.

노무현 후보에게 정면승부로 나가자고 제의했다. 피말리는 순간이 지났다.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높았던 강원도에서 노무현 후보는 7표 차로 1등을 차지했다.

이인제 후보를 누르자 우리는 환호했다. 이인제 후보의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속으로 외쳐다.

“이제는 이겼다.”

나는 노무현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인천 경선에서 참모진은 인터넷에 ‘사랑한 게 죄냐’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결혼 전 장인이 저지른 일로 꼬투리를 잡는 이인제 후보를 공격한 것이다. 노 후보도 대의원들 앞에서 목청을 돋웠다.

“여러분! 저는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면서까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면 대통령 안 하겠습니다.”

진심에 찬 토로였다. 여성 대의원들은 감동했다.

운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유독 그 생각을 많이 하게 된 경선이었다.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강원도 경선 때, 강릉에서 대의원의 결혼식이 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 운동원이 봉고 1대로 대의원 5명을 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투표 직전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들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승패를 갈랐던 7표차. 만약 그 지지자들을 데리고 오지 못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했다.

흔히 지도자는 하늘이 낸다고 말했다.

이 말을 실감하게 하는 사건이 또 있었다. 인천에서 경선하던 날이었다.

이번에는 이인제 후보 측이 발을 굴렀다. 그를 지지하는 지구당의 대의원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그 대의원들은 배가 뜨지 않아 투표장에 못 나왔다.

나는 말 그대로 ‘하늘이 노무현 후보를 돕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경선 릴레이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지금도, 누구나,

감동적으로 기억한다. 그 감동의 원천은 노무현 후보의 인간적인 면모였다. 한 인간의 진심을 대의원들은 받아들였다. 진실한

감동을 이끌어내고, 그 감동은 기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