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책 그리고 인생

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도 위대한 생각들

세미가 2010. 3. 16. 18:52

 

 

위대한 책을 남긴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책들에 기대어 유시민 장관님의 나름의 행로를 걸었던 삶의 과정에서 보고 생각한 내용들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는 14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 중에서 몇 개의 책 중에 인상적인 부분들을 체크해 보았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님의 전환시대의 논리 

지식은 맑은 영혼과 더불어야 한다.

 

[나는 리영희 선생처럼 살고 싶었다. 소신껏 글을 썼다는 이유로 공안 기관 지하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이 두렵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사는 것을 꿈꾸었다.]

[언론 자유가 신문사 사주의 독점적 특권이 되고, 언론사가 사회의 목탁이 아니라 세습적 권력이 되고, 기자가 언론인이 아니라 기업의 직원처럼 행동하는 시대가 되고 보니 이 글이 더 귀하게 다가온다.

리영희 선생은 1964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관련 특종기사를 썼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30년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무려 아홉 번 체포되었고, 다섯 번 징역형을 받았으며, 직장이던 언론사와 대학에서 각각 두 번씩 쫒겨났다. 이 모두가 헌법이 보장한 언론 자유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 벌인 취재와 집필 활동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

이 글을 읽다 보니, 며칠 전 읽었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진보의 미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진보신당, 민노당 쪽은 ‘제3의 길이 무슨 소리야?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 이렇게 갔거든요. 리영희 선생이 우리나라에서 하도 좌파를 빨갱이로 모니까, 좌파를 옹호하는 뜻에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을라나 모르겠네. 독일의 라퐁텐처럼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라고 그냥 내질러도 괜찮은데 한국에서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해야 몰매를 안 맞는 수준 아니겠어요?”

 

 

글을 소신껏 쓰기가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심장은 왼쪽에서 뛴다.라고 말 할 수 없는 현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고 해야 몰매를 맞지 않는 현실에서 소신을 지키며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많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온 지식인의 양심에 대해서 저자는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성찰을 게을리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핑계 삼아 진실을 감추거나 외면하지 않았느냐. 너는 언제나 너의 인식을 바르게 하고 그 인식을 실천과 결부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느냐.
부끄럽다. 당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사상의 은사’ 앞에 서는 것이 정녕 이토록 두려운 일인가.]

 

 

지식인으로 살아오신 리영희 선생님께서는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를 말씀하셨고 지식인으로 살고자 하는 유시민 장관은 지식인으로서 삶에 대해서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청춘을 뒤흔든 혁명의 매력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 [공산당 선언]
 

 

20여 년 전 대한민국에서 「공산당 선언」을 읽거나 <인터내셔널>을 노래하는 행위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중대 범죄였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공산당 선언 중에

“권력을 쥔 적대 세력에게 공산당 같다고 비난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으며”, 이 대목에서 나는 무릎을 탁 쳤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1848년 유럽이 아니라, 1978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북한 공산당의 조종을 받는 반체제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 정당의 총재도 소위 ‘용공조작’의 미수를 피하지 못했다. 특히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던 야당 지도자 김대중 씨에게 집요하게 공산주의자 혐의를 씌웠다. … 오늘날 미얀마 군사정권이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가하고 있는 탄압과 똑같은 짓을 한 것이다. … 인류 역사에서 사상의 자유를 가장 철저하게 말살한 인물이 둘 있다. 법가의 책만 빼고 제자백가의 모든 책을 불태웠던 진시황, 그리고 나치가 허가한 것만 빼고 공공 도서관의 모든 책을 불태웠던 히틀러가 그들이다. …지금 두려움 없이 「공산당 선언」을 읽는 나는 행복하다. 거기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류를 담은 책을 마음대로 읽을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이명박 정부의 한국 현대사 교과서 강제 수정 사건을 보라. 역사 교과서의 슬픈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과학적 사회주의’를 선보인 「공산당 선언」은 과학의 옷을 입은 역사 종말론이 된 것이다. 마르크스가 예언한 ‘천년왕국’은 오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계속 될 것이며, 그의 역사 종말론은 인류 자체의 종말이 찾아들 때까지 실현되지 않은 예언으로 남을 것이다. 다른 모든 종말론이 그런 것처럼
… 비록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할지라도 언제나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라고 말한다. 어찌 고맙고 귀하지 아니한가.

 

 

공산당 선언.. 과학의 옷을 입은 역사 종말론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자본주의의 경제체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직시하라는 말에 고맙고 귀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깊은 공감을 한다.


권력 투쟁의 빛과 그림자
사마천, 사기

 


‘사기’는 인간의 비극적 삶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열전’의 등장인물 가운데 천수를 누린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비참하게, 억울하게, 장렬하게, 더러는 멋지게 죽었다.

처음 ‘열전’을 읽었을 때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울린 비극적인 죽음이 주인공은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긴 명장 한신이었다.

역모의 혐의를 쓰고 체포되자 한신은 이렇게 한탄한다.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을 치워버린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개천에서 난 용’ 한신은 큰 야망과 빼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불우한 환경 때문에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딘 끝에 뜻을 이루었다.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인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한신과 유방이 빛을 좇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한 본능에 이끌려 투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인의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사기’를 덮으며, 한신과 한고조가 겪었던 인간적 고통과 비극적 죽음에 대해,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해 인류에게 선사한 역사가 사마천의 삶에 대해 깊은 존경과 높은 찬사를 바친다.

 

 

사마천의 사기.. 여러 가지의 책으로 아주 많이 출판된 책이다. 많은 고사성어의 근간이 되기도 한 사기..토사구팽.. 바로 이 사회 삶의 한 단편이 아닐까? 사기를 통해 다시 보게 된 인간적 고통과 비극적 죽음에 대해 다시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라는 말에 다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예전에 읽었을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책을 읽을 때도 그 저자에 대해서 알고 그 책을 저술할 때의 시대를 느끼며 독서를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슬픔도 힘이 될까
알렉산드로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스토리’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는데도 일단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 두기 어려운, 놀라운 소설이다.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의 슈호프는 지극히 평범한 러시아인이다. 수용소에서 보낸 삼천육보십삼 일 동안 그가 한 일은 오로지 하나, 생존을 위한 투쟁뿐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러시아 남자는 그 절박한 생존 투쟁의 와중에도 나름의 원칙에 따라 인간의 품격을 지킨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슬픔과 노여움으로 쓴 소설이다. 슬픔은 슬쩍슬쩍 비칠 뿐이고 노여움은 극단적으로 억제되어 있지만, 이 소설이 묘사한 상황은 그 자체로서 측정할 수 없이 깊은 슬픔과 뜨거운 노여움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와 같다.

노동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사람, 땀 흘려 일하는 사람, 때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라 할지라도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드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에서 얻는 감명이 25년 세월을 견디고 내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나는 이번에 알게 되었다.

…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수용소에 갇혀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힘든 강제 노력에 동원된 죄수들이 노동 그 자체가 주는 순수한 즐거움에 몰입하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 마치 캄캄한 방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 책들을 읽을 당시의 저자의 생각과 시대과 있을 것이고 지금 현재 우리들이 이 책을 읽을 때의 시대와 사상이 다르니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읽어보지 않은 책이지만, 김대중 대통령님의 옥중 서신에서 아들 홍걸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몇 번이나 권했던 책이다.

 

 

그래서 한번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인데 이번 기회에 꼭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청춘독서에서 소개하는 14권의 책..

 

내가 읽어본 책도 있고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있는데 청춘 독서를 읽고서 다시 이 책들을 읽는다면 더 많은 고민을 더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100년 후에도 모든 젊음을 뒤흔들 위험하고 위대한 질문들

 

한 사람의 영웅이 과연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불폄등은 불가피한 자연의 법칙인가

 

혁명은 과연 가능한가

 

세상의 진보를 믿어도 되는 걸까


시공간을 뛰어 넘어 인류가 고민했던 질문들에 답해왔던 책들, 왜 우리는 지금 그 책들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하는가. 하나의 책을 읽고 또 읽는다는 것이 어떤 통찰을 던져 주는가, 한 시대를 흔들고, 한 사회를 무너뜨리기도 했던 ‘한 권의 책’, 그 뒤에 숨은 ‘읽는 힘’을 만난다.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