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6)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광재 강원도지사 당선자
국회의원일 때 노무현 의원은 비서관을 다른 의원의 두 배 정도 두었다고 한다. 의원 역할 수행에 우수한 두뇌를 많이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여느 의원과 같은 금액의 세비를 받아 두 배로 지출한 것이다.
비서관들이 많다 보니 그들이 차지하는 공간도 넓어야 할 터, 그래서 노무현 의원은 일반적으로 비서관들의 사무 공간보다 넓은 국회의원실을 비서관들에게 내주고 자신은 비서관들이 쓰는 공간을 썼다고 한다.
노무현, 희망 없는 정치인?
노무현 의원이 국회의원 선거에 두 번, 시장 선거에 한 번 떨어지자, 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 노무현은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보았다.
세비가 안 나오니 비서관들에게 줄 급여도 없었을 것이었다. 이에 비서관들은 여러 가지 길을 택했다.
지난 회에도 언급했듯 당시 내가 만났거나 이름을 들은 노무현 전 의원의 참모는 이광재, 조상훈, 안희정, 서갑원 네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국회의원의 비서관이라고 하면 의원의 지시사항을 수행하는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노 의원과 참모진은 상하 관계가 아닌 걸로 보였다. 물론 결정적일 때는 노 의원의 지시를 따랐겠지만, 정책을 함께 논하고 방향을 잡을 때는 동료처럼 보일 정도로 노 의원은 비서관들을 신뢰했다.
어느 날 지방자치에 대해 쓴 글을 봤는데, 내용도 좋을 뿐더러 문장이 참 좋았다. 그래서 이 원고를 누가 썼느냐고 노 의원께 물었더니 “안희정”이라고 했다. 이름이 여자 같아서 여자냐고 물었더니 남자라고 하였다. 안희정 씨는 직접 본 적이 없다.
초기에 가장 자주 만난 사람이 조상훈, 이광재 씨였다. 조상훈 씨는 말이 없고 듬직했다. 조선 시대라면 정승감이라고 할 만한 이미지를 주는 인물이었다.
조상훈 씨가 제일 먼저 독자적으로 정계에 진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1995년 제4대 서울시의회 의원, 1998년 제5대 서울시 의회 의원을 했다. 이번 지방 선거에는 국민참여당에서 기호 7번으로 출마했으나 4위에 그쳤다. 언젠가는 더욱 큰 역할을 하리라, 지금도 기대한다.
끝까지 노무현을 포기하지 않은 이광재
이광재 씨는 참 영민하고 신념이 투철했다. 노무현 의원이 힘들 때도 거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잠깐 외국에 갔다 온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사람이 희망 없는 정치인이라고 노무현을 포기했을 때도 그는 노무현을 포기하지 않았다.
노무현 의원이 여러 번 낙선의 고배를 마시고 정치 인생도 하향곡선을 긋고 있을 때, 이광재 씨는 어떻게 하면 후원회를 활성화할까 고심을 많이 했다. 처음부터 그때까지 이기명 선생이 계속 후원회장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재력 있는 분을 후원회장으로 모시고 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서갑원 씨는 가끔 볼 수 있었다. 잠시를 봐도 친절하고 겸손했다. 너무 키가 커서 얼굴을 한참 올려다봐야 볼 수 있었다.
참모들 덕분에 더욱 올라간 노무현의 가치
내가 노무현 의원을 지지한 데는 이들 비서관들에 대한 신뢰도 큰 역할을 했다. 다들 노무현 의원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똑하고 괜찮고 쓸 만한 사람들이었다. 노 의원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신통찮았으면 지지하면서도 갈등을 많았을 것이다.
나중에 언론에도 알려졌지만, 노무현 의원은 대통령이 되어서도 이들과 난상토론을 벌였고, 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싶으면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오랜 시간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인연이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모 가운데 청와대로 들어간 이후에 만난 사람은 이광재 씨뿐이다. 남편과 ‘투란도트’란 뮤지컬을 보러 특설무대가 설치된 상암경기장에 갔다가, 대기실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안부를 물었다.
이광재 당선자, 팔뚝이 아니라 몸통이 돼야
2010. 4. 22. 연합뉴스 인터넷 사이트에서 퍼온 사진이다.
이광재 씨가 청와대로 간 이후, 그의 내면과 정치 생활에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했는지 잘 모른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 뿐이다. 그가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재판을 받고, 정계 은퇴 선언 이후 정계 복귀, 강원도지사에 당선됐으나 다시 도지사 직무정지 등의 일을 겪는 것을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후 이광재 씨가 걸어온 정치 행보는 다음과 같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의 캠프에서 기획팀장으로 활약했고,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 기용됐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당선됐으며, 18대 총선 때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재선되었다. 그러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으로부터 불법선거자금을 받은 혐의로 2009년 3월 기소되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이번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로 당선되었다. 2009년 9월 1심 재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과 추징금 1억4000만원이 선고됐고, 지난 6월 11일 2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1억 1417만여 원을 선고 받았다. 이로 인해 강원도지사로서의 직무도 정지당했다.
이광재 당선자에게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최고 권력자의 측근에서 소신을 펼쳤던 그로서는 정권 교체 후 겪는 일련의 일들이 인생 최대의 굴욕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아마도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과 추한 모습에 더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아직 젊다. 다른 사람이라면 정계에 데뷔할 만한 나이에 청와대 최고 요직에서 활약했고, 국회의원도 두 번 당선했으며, 도지사로도 당선되었다. 만약 정치에 대한 뜻을 접지 않는다면, 지금의 시련은 그가 튼튼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아주 풍부한 자양분이 되리라고 믿는다.
인간 이광재의 진면목을 보여 달라
나는 지금도 그의 젊은 시절의 순수한 열정과 사명감을 기억한다. 혹시 그가 권력을 갖고 있는 동안 초심을 잃었다면, 이번 고난을 계기로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 재기하기를 바란다.
억울하게 당한 거라면, 앞으로 깨끗하면서도 정당한 정치 활동을 하면서 당당함을 밝혀 주기를 바란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건 순간이지만, 회복하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 국민과 함께 하면서 인간 이광재의 진면목을 보여 주기 바란다.
또 하나, 이제는 세상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제까지 누군가의 팔뚝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러기엔 이광재 당신이 아깝다.
이제는 이광재 당선자도 몸통이 되길 바란다. 이번 시련을 이광재 당선자가 팔뚝에서 몸통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인간 이광재로서 우뚝 서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위기가 호기라고 하지 않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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