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희망이야기

가슴에 묻는 자식 같은 소

세미가 2010. 12. 24. 15:05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소를 키웠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에게는 소는 소중한 일꾼이었다. 콤바인이나 트랙터가 있기 전이었으니, 농번기철이면 소는 쟁기질을 했고 외양간의 짚은 두엄으로 내년 농사를 위한 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오빠들은 소를 먹이려 산과 들에 나가곤 했다. 오빠 또래의 친구들이 소를 먹이러 나갔고 한참 놀다가 해질녘에 들어오곤 했던 것 같다.                                         <맑은 눈망울의 송아지들, 출처: 뉴시스>


어린 나는 집에서 키우는 소지만 날카로운 뿔에 찔릴까 무서워서 가까이 가서 보거나 쓰다듬어 준 적이 거의 없었다. 사촌 언니가 마을 소에 찔린 후로 소를 무서워하게 된 것 같다. 시골 마을에는 가끔 아주 난폭한 소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소 잔등에 붙어 있던 진드기를 떼어주시곤 했다. 그 진드기들이 소의 피를 빨아먹었던 것 같다. 배가 빵빵해진 진드기는 징그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말도 하지 못하는 소는 얼마나 간지럽고 아플까?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소는 꼬리로 간지러운데를 치거나 눈만 껌벅거릴 뿐이었다.


     <영화 워낭 소리의 할아버지와 늙은 소>

 

초등학교 졸업 할때 까지 집에서 소를 키웠었고, 소를 먹이러 가는 일은 오빠나 할머니가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소는 나에게는 친근한 느낌과 추억이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집에서 키우던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그 어린 송아지가 태어났을 때 정말 신기했다. 막 태어난 송아지는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다. 힘 없이 걷기는 했지만 막 태어난 그 송아지는 너무나 예쁜 모습이었다. 그 송아지는 어미소처럼 뿔도 없었고 작아서 내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송아지는 마당을 걸어다니기도 했고 나는 마루에 앉아 송아지를 보곤 했다.


우리 집에는 소를 두 마리나 키울 필요는 없었기에 얼마 후, 송아지를 팔게 되었다.  맑은 눈망울의 송아지가 눈에 아른거렸다. 어미소는 음메~음메~ 하고 울었고 송아지도 어미소를 떠나기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송아지는 어딘가로 떠났다.


그날 밤, 어미소는 밤새 울었다. 그리고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으로 어미소의 눈이 이렇게 크고 슬퍼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어미소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집에서 개, 돼지, 소, 닭, 오리를 키웠던 것 같다. 그런데 다른 동물들과 달리 소에 대한 부모님과 할머니의 애착은 남달랐던 것 같다. 소는 예전부터 집안의 재산이었고 가족과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지난해 영화 ‘워낭소리’를 보면서 어릴 적 키웠던 소와 돌아가신 할머니가 유난히도 그리웠었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에게 소가 자식과 같고 목숨처럼 소중했던 것처럼 소는 가족과 같은 느낌을 주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집에서 키우던 어미소가 생각나게 된 것은 구제역이 번지면서 자식처럼 키워오던 가축들을 살처분하는 광경을 보면서 오열하는 뉴스를 보면서이다.


"누워있어요, 지금. 자식새끼 한두 마리도 아니고 400 마리를 땅속에 묻고 울부짖고 있어요." 라고.. 매일 밥을 주고 쓰다듬어 주던 자식 같던 가축들이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가슴이 아린다.


<살처분을 앞둔 송아지와 가슴아픈 할아버지, 출처:연합뉴스>

 

소 울음 소리가 나던 축사들은 텅 비었고 출입이 통제되면서 인적이 뚝 끊겼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주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도저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 안타까움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살처분 되기 전에 사료를 주는 아주머니의 눈물>                <살처분 되는 소들- 가슴에 묻다>

 

축산농가의 아들의 살처분 일지를 보면서 그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자식처럼 키우던 121마리의 소를 살처분해야 하는 이 현실, 독약 주사를 마쳐야 하는 방역담당자는 울고, 구토를 하고, 소를 키우던 농민들도 가족들도 함께 온 공무원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살처분해야 한다. 살처분될 자식 같은 소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사료를 먹여주는 그 마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태어난지 3일 밖에 안 되는 송아지마저도 살처분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3일된 송아지는 아직 아무것도 모를텐데..


어릴적 기억 속의 그 송아지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30만마리 이상의 가축을 살처분해야 하는 이 상황까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눈망울이 너무나 크고 맑아 슬퍼보였던 어미소의 눈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가슴에 피멍이 든 농민들의 마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 식객의 배우 김강우와 소 꽃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