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섬진강.. 좋은 추억이 깃든 곳이다.
광주에서 살 때는 매년 여름이면 지리산 쌍계사 근처 계곡에서 여름을 보내기도 했고, 지리산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 매화마을은 언니와 언론을 통해 자주 접했었다.
지리산은 고등학교 졸업 후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본 곳이고 대학 1학년 방학 때 지리산 종주를 했었다. 산행을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지리산 종주는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종주 시작한 첫날 회의를 했었다. 동아리 MT로 다들 남학생이고 여학생 4명이었다. 대학 1학년과 2학년.. 두 명 씩, 2학년 언니들은 포기하자고 했고 1학년인 나와 내 동기는 그래도 시작했으니 종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날 종주하겠다고 한 내 자신을 많이 후회했고 마지막 날은 길을 잃어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종주 후에 느낀 성취감과 보람을 알게 해준 곳이 바로 지리산이다.
4년 전 섬진강가의 매화와 산수유 축제에서 본 지리산 아랫자락 구례와 하동의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그 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매화꽃보다도 취화선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대나무숲길이었다. 바람이 너무나 세차게 불어서 바람과 대나무가 빚어내는 소리와 끓어질듯 흔들리지만 휘어지거나 꺽이지 않은 대나무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었다. 또한 청매실 농원의 위쪽에 가서 보는 섬진강의 풍경 또한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바람에 떨어지는 매화 꽃잎은 한겨울의 눈처럼 아름다웠고 멀리 보이는 섬진강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특히나 구례의 노란 산수유 꽃 위에 내리는 3월의 함박눈이 내렸던 그날은 잊을 수가 없다.
지리산.. 아랫자락에 사는 영혼이 맑은 사람들의 이야기..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버들치 시인과 낙장불입 시인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 생명을 소중히 알고 함께 우리의 땅을 지키고 싶어하는 수경스님과 4대강 반대 운동 이야기.. 가슴 따뜻하지만 안타까움을 많이 느껴야 했던 이야기들이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 웃음을 짓다가 감동의 눈물을 지으며 읽었던 책이다.
여심을 흔드는 버들치 시인과 낙장불입 시인과 고알피엠 여사, 귀농해 농사를 짓는 기타리스트, 내비도 교수 최도사가 지친 서울을 떠나고 지리산을 등지고 살아가고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 행복학교이다.
여심을 흔드는 노총각 시인 버들치 시인..마음이 선하고 여리고 한국 음식을 정갈하게 만들어내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이다. 강도를 만나서 강도를 할 수 밖에 없는 그 사람을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관 값으로 200만원을 예금한 현금카드까지 쥐어주는 선하고 선한 사람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집 앞 개울가에 키우던 버들치를 전기충격기로 잡아가려는 사람들과 싸우고 아파한 시인, 생명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동네 아주머니들과 순례단의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낙장불입 시인...유명한 시인이자 신문기자였던 낙장불입 시인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어릴적 반공표어 상을 받았던 어린 시절 “오랜만에 오신 삼촌 간첩인가 다시 보자” 표어는 큰 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기쁜 얼굴 대신에 슬픈 얼굴의 어머니..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된다. 아버지는 지리산 빨치산이었다는 것을..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싶어 지리산으로 들어온 낙장불입 시인.. 수경스님과의 만남으로 지리산 살리기 도보순례,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 생명평화 오체투지순례 등 2만 5천리를 걷는 10년의 장전을 해오고 있다.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의 오체투지 행렬에 깃발을 들고 함께 한다. 부인 고알피엠 여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지리산 지킴이 함태식 옹 이야기가 나온다. 언젠가 지리산 지킴이인 함태식 옹의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지리산을 떠나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정말 지리산을 사랑하는 함태식 옹은 노고산 산장에 호롱불을 달아놓는다고 한다. 그러면 멀리 어둠 속에서 헤매던 사람들이 그걸 보고 찾아온다고 한다. 그 작은 호롱불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는 이야기.. 작은 일도 지극해 지면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된다는 말이 마음 깊이 와 닿는다.
내비도 교주 최도사.. 할머니들 고민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언제나 ‘내비도’를 말하는 최도사.. 버들치 시인이 시집을 내서 돈이 생겼다며 최도사에게 밥을 사겠다고 했다. 밥을 먹으러 간 최도사가 고른 메뉴는 사리였다.1000원 짜리 가장 싼 메뉴를 고른 최도사..“글쎄, 사리가 무슨 음식인지 몰라도 적어놨으면 팔아야지... 시인이 무슨 돈이 있어! 난 사리야! 그냥 내비도!” 내비도 교주라 불린다. 모든 것을 내비두면 된다.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때는 너무 집중하지도 너무 건성으로도 들으면 안된다는 주의를 가진 최도사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 이 소제목을 보면서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부피에라는 한 노인이 만들어낸 프로방스의 한 고원의 기적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후미진 산에 10년 20년 후를 생각하며 나무를 심고 가꾸어온 사찰 식당 여주인의 아버지.. 아흔이 되셨지만 지금도 매일 아침 산에 가서 나무들을 쓰다듬고 말을 거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부피에라는 노인을 상상했다.
수경스님은 기자출신이고 운동경력이 있다는 말에 낙시인을 한 번도 보지 않고도 지리산을 살릴 일꾼으로 점찍었다. 1999년부터 낙시인은 그를 충실히 수발하고 수경스님은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하염없이 넓은 아량으로 낙시인을 아꼈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낙시인이 수경스님을 어떻게 여겼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린다. 수경 스님의 잠적하셨다. 문수 스님이 소신공양 이후에 거의 표정을 잃고 다무셨다고 한다.
“문수 스님은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어. 보통 분신한 사람이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있다가 죽게 되는 것과 다르지. 그 이유는 그분이 내장까지 완전히 연소하도록 석유를 드셨기 때문이야. 그러면서도 가부좌를 틀고 입가에는 미소까지 지은 채로 돌아가셨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생과 사가 이미 하나이고, 중생과 내가 이미 하나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야. 그분은 최근 3년 동안 벽만 보고, 넣어주는 하루 한 끼 밥만 먹고도 그걸 깨달으신 거야. 이제 내가 죽어야 할 차례인 것 같은데 낙시인, 나는 아직도 죽음이 두렵다. 그러니 나는 신도들에게 절을 받을 자격이 없는 중인거야.”
새벽마다 화장실을 맨손으로 손수 치우시던 수경스님, 삼보일배로 무릎 연골이 다 닳아 걷지도 못한 분이 풀과 모래를 섞어 맨손으로 화장실을 닦았던 수경스님이다.
수경스님은 절뚝거리며 어디를 각 계실까? 선방에서 3년 면벽한 스님을 불태우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40년 선방에 있던 스님을 불러내 삼보일배를 하게 하고 결국 사라지게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러고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은 이 나라는 대체 어떤 나라인가?
그리고 버들치 시인에 대한 여성들의 연정과 사랑에 아파하는 L선배와 사랑도 병이라고 했던 등불, 강남좌파에게 잠시 흔들렸던 사찰 음식점 여주인의 사랑 이야기.. 낙원상가에서 귀농한 기타리스트와 함께 고알피엠여사, 버들치시인이 함께하는 동네 밴드 공연과 팥빙수가 맛있는 소풍과 반짝이 옷을 파는 여인,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지리산으로 내려와 황토집을 짓고 갤러리를 만든 지리산 사진작가, 시골 목수 노총각의 비가 등의 이야기가 눈에 그려진다. 수경 스님의 빈자리와 수경 스님이 즐겨 먹던 냉면을 먹지 않는 스님들, 1년에 50만원이면 살 수 있는 마을..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우리의 가장 행복한 모습과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모습을 동시에 본다.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지리산에서의 추억을 찾고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아슬아슬한 이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아본다.
선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이 행복학교 사람들이 지키고자 하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희망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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