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책 그리고 인생

허수아비 춤으로 살거나 허수아비 춤을 만들거나..

세미가 2011. 1. 12. 09:55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와 조정래 작가의 소설 '허수아비 춤'을 3-40대 넥타이 부대가 많이 읽는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부당거래는 영화 개봉한 날 보았다. 부당거래를 보면서..답답함과 우울함 마저도 느꼈다.

영화로 먼저 본 후에 접한 기사였다.


류승환 감독의 부당거래는 PD 수첩 방영으로 스폰서 검찰이라는 말이 고유명사가 된 듯한 시기에 나온 영화였다. 진상위원회, 특검이 진행되었지만 국민들은 검찰에 대한 신뢰를 하지 않는다. 스폰서 검찰이 채 덮어지기도 전에 그랜저 검사라는 또 다른 검찰에 대한 신뢰가 다시 한번 땅에 떨어지고 만 이러한 시기에 개봉된 영화.. 부당 거래..


요즘 한명숙 총리의 재판을 보면서 검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검찰의 협박으로 거짓 진술을 하게 되었다는 증인의 진술과 검찰이 증인의 부모까지 협박했다는 기사로

 한명숙 총리의 재판은 또 세간의 중심에 서 있고 검찰의 도덕성은 땅 밑으로 파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허수아비 춤’은 어떤 내용일까? 작가의 서문을 읽다 보니.. 정치의 민주화에 이어 경제의 민주화라는 말이 나온다.


경제의 민주화란?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 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가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제 민주화’다.


소설 허수아비춤을 읽으면서 김용철 변호사를 생각했다. 거대 기업의 비자금 조성과정과 정관계 로비의혹, 삼성 에버랜드를 연상하게 하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탈법적 행위 등이 주 소재가 된다.


'허수아비 춤'에는 재벌의 기획조정실 역할을 하는 문화개척센터의 형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한 경제 논리를 펴고 있다. 정치권, 언론, 학계, 검찰, 행정부까지 모두 돈으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 에버랜드 재판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삼성은 어떻게든 살아나는구나..그 어느 곳도 삼성의 대척점에 설 수는 없겠구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허수아비 춤에서는 그 모습을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자금을 조성해서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권력기관과 언론들을 상대로 뇌물이나 촌지를 제공하는 장면들은 참 리얼했다. 그리고 기업에 누가 되는 글을 쓴 허민 교수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돈이면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들과 골프를 치면서 고의적으로 돈을 잃어 준다거나 해외 골프여행을 주선하는 장면이나 고위직이 아닌 일반 국세청 직원의 이사 집에 가서 이사 비용을 지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까지 할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조직 논리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옷을 벗어야 하는 검사 전인욱의 사례를 보면서 검찰 조직과 부당거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잘 나가는 공무원들이 퇴임해서 대기업에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이 책에서처럼 로비스트로 활동을 하는 것일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부당거래 영화를 보는 듯 했고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자이언트라는 드라마가 연상되었고 여러 대기업의 비자금 사건의 신문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스폰서 의혹이 나오고 기업의 비자금 이야기가 나온다. 검찰은 기업을 수사하고 정치권과 연계가 되어 있다는 기사는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소설은 너무나 현실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어둡고 우울할까?라는 의문을 던져 보기도 한다. 끝없는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2천여 년 전에 사마천의 사기에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뜯고,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 하고천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당하고,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라는 말이 나온다.


정말 소설 속을 보면 그룹 회장의 노예가 된 것처럼 살아간다. 윤성훈, 박재우, 강기준이 그랬다. 윤성훈의 회장의 자식들보다도 더 충성심을 보이는 인물이었고 강기준의 아내는 연봉과 성과급을 많이 주는 회장님을 신처럼 모신다. 바로 돈의 힘이다. 


정치의 민주화를 위해 많은 피를 흘리고 싸워왔다. 체류탄 가스를 마시면서 목숨을 걸고 일구어낸 게 현재의 정치 민주화다. 그런데 경제의 민주화는 어떠한가? 오로지 양적 성장을 위해 대기업을 키우고 성장시켜 왔다. 그러는 동안에 경제의 민주화는 사라졌다.


경제의 민주화가 사라졌기에 정치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마저 위협을 당하는 현실이 되었다. 그 앞에 시민단체와 몇몇 진보 정당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미약할 수 밖에 없다.


허수아비 춤에서는 검사였던 전인욱 변호사와 진보적인 의식의 허민 교수가 미세한 저항을 하지만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우리 현실과 비슷한 것 같다.


왜? 허수아비 춤일까?

조정래 작가는 재벌이 이렇게 거대하게 경제 민주화를 무시한 현실은 우리 모두가 방치해 허수아비 춤을 춘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재벌과 권력자들이 장악한 야합을 허수아비 춤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허수아비 춤.. 경언유착, 정경유착, 경학유착, 권경유착....

이 모든 것을 허수아비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 목표이며 미래이다.

물론 쉽지가 않을 것 같기는 한다.


경제의 독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자신은 더 이상은 허수아비 춤을 추지 말자.

우리의 자식들을 위해서 우리는 허수아비가 아닌 의식 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이 되도록 하자.

 더 이상 허수아비로 살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