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0월 10일인 지난 11월 5일은 할머니 10번째 기일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엄마 아빠보다도 할머니와의 추억이 훨씬 많다.
늘 할머니 품 속에서 잠들었고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 했었다. 가끔 박물장수인 아주머니들이 오시면 집에서 재워주곤 했는데 늘 할머니와 도란도란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곤 했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 언니 오빠들 보다 많이 기억하는 편이다.
고향 완도까지 가는 길은 멀지만, 그래도 할머니 기일이 되면 휴가를 내서라도 꼭 갔었다.
금요일 오후, 광주로 가는 KTX 예매를 하려고 했으나 다 매진이었다.
매진이 아닌 곳은 영화관 뿐이었다. 영화는 소지섭 한효주 주연의 “오직 그대만”이라는 영화였다.
너무나 아픈 사랑,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의 사랑이야기.. 내 마음 속에 오직 한사람만을 기억한다는 포스터 문구가 가슴에 새겨지는 듯 하다.
너무나 가슴저리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였다.
우리 할머니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해 보았었다.
영화 속의 철민과 정화처럼 뜨거운 사랑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평생을 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리며 살아오신 할머니의 인생..
<집의로..영화를 보면서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17세에 시집을 오셨다. 그 시대는 대부분 그랬겠지만 할아버지 얼굴 한번 본적 없이 그냥 증조할아버지께서 며느리로 낙점하셨고 혼례를 치루고 시집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3년도 째 함께 살지 않으시고 일본으로 떠나셨다. 할머니가 아버지를 임신한지도 모르고 떠난 후.. 수십년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 후로 많은 분들이 할머니께 재가 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었고, 할머니는 그 때마다 그런 분들은 두 번 다시 집안에 발을 못 붙이게 할 정도로 강경했다고 한다. 치매에 걸리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외아들인 아버지를 기대며 평생 홀로 사셨다. 20세에 홀로 되신 후 돌아가실 때인 81세까지 60여년을 홀로 사셨던 것이다.
홀로 살면서 서러움도 많았고 많은 유혹도 있었겠지만 할머니에게 남자는 평생 할아버지 한분 뿐이셨다. 그게 사랑이었는지..의리였는지..아님 그 시대를 살아온 할머니 대의 여성들의 숙명이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작은 집 고모가 병문안을 왔었다. 사는 게 쉽지 않아 고향집에도 잘 내려오지 않았던 작은집 고모의 병문안은 의아했었다. 그때 고모가 와서 했던 말은 나는 작은 어머니로 병문안 온게 아니라 “삶이 너무나 기구했던 한 여자로서 안타까워 왔다”라고 이야기 했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평생 사랑이라는 것을, 여자의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며 살지 못했던 할머니의 기구의 삶이 안타까웠던 것 같다. 웃음도 울음도 없이 늘 무표정 했던 할머니.. 내 친구들은 가끔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면 참 무서웠던 분이라고 기억한다. 나에게는 더 없이 따뜻하고 여린 분이었는데.. 말수는 적었지만 마음으로 엄마와 손자 손녀를 예뻐하셨던 분..그러나 표현이 너무나 부족했던 분이 바로 우리 할머니셨다.
할머니 제사 상 앞에서 한참을 그냥 앉아 할머니를 생각했다. 평생 따로 사셨지만 돌아가신 이후에는 이렇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함께 계신다.
뇌출혈 후 점점 찾아왔던 치매로 인해 아이가 되어버린 할머니는 더 이상 무뚝뚝하지도 말수가 적지도 않았다. 항상 눈 앞의 손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누군지 똑똑히 모르겄소..”하며 수줍게 웃는 할머니.. “할머니 제가 지숙인데 지숙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물어보면 ”거기도 지숙이요.. 완도군 신지면에도 지숙이가 있는디..“라며..웃음을 지으셨던 할머니.. 할머니 앞의 손녀는 못 알아봐도 머릿속에 손녀딸 이름만은 잊어버리지 않으셨던 할머니..
돌아가시는 해에 친정집에 가셔서 절대 집으로 안 오시겠다고 우기시다가 엄마가 ”지숙이 집에 와 있는데 어머니 집에 안가실거에요?“라고 하자 엄마보다도 먼저 할머니가 집으로 오셨다고 하셨다. 막내 손녀여서 할머니의 사랑이 컸던 것 같다. 평생을 딸처럼 할머니를 모셔온 엄마를 돌아가시기 전 3일 밤낮을 그렇게 쓰다듬었다고 하셨다. 평생을 너 때문에 행복했다..고맙다..말씀하신 것처럼.. 마지막 손녀 딸을 보신 할머니는 아무리 할머니를 불러도 대답은 없었고 초점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할머니는 나의 얼굴부터 팔다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말씀도 못하시고 알아보지도 못했지만 그동안 고마웠다..라는 표현을 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10년 전에 떠나신 할머니..
<평생 할머니의 딸 같은 며느리였던 엄마>
우리 할머니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했을까?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냥 지우고 며느리와 어머니로서의 삶만 살았던 것일까?
할머니가 60년 동안 홀로 사셨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물어봤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많은 사랑을 주고 떠나신 우리 할머니..
할머니의 사랑이 그리운 날이다.
<늦은 가을 할머니가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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