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사람들과의 추억..

김근태 의장님- 연탄처럼 따뜻했던 분

세미가 2011. 12. 30. 17:33

2월 30일, 새벽 6시에 온 문자.. 새벽 5시 31분 김근태 의장님 별세 소식이다.


위독 하시다고 하셨는데, 전날 저녁 별세 기사가 오보라고 했었는데..


결국 2011년의 끝자락에 떠나셨다.

 

 


지난 총선, 뉴라이트 출신의 신진호 후보에게 김근태 의장님이 패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아무리 뉴타운 바람이 불었다고 해도 김근태 의장님이 신지호 후보에게 패하다니.. 가끔 의장님을 모시던 친구들과 지인들을 통해서 의장님의 근황을 듣곤 했었다.


20일 전 쯤 둘째 따님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눈물의 결혼식을 올렸다는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서글프셨을까??

<해맑게 웃는 의장님, 출처:문화일보>


저의 아버지도 아프시지만 늘 막내딸 결혼식에는 본인이 직접 손을 잡고 들어가실 수 있다고 하셨었는데 모든 아버지의 마음은 같았을 것 같아 더 슬펐다.


민주화 운동이 남긴 것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하셨다고 한다.


1985년 9월  김근태 의장님은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다는 혐의로 안기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이근안씨에게 고문 당하셨다고 한다.


이근안씨는 김근태 의장님께 전기고문 8차례와 물고문 2차례를 행했으며, 그 후 고문 후유증으로 콧물 흘림과 손 떨림 등의 증세가 나타났었다. 사망 원인인 파킨슨병도 고문 후유증 때문이라고 한다.

<2006년 연탄나눔, 출처:뉴시스>


(사)따뜻한한반도연탄나눔 활동을 하면서 만나뵌 인재근 여사님과 김근태 의장님 모습은 덕이 풍겨나오는 분들이셨다.


언제나 밝고 쾌활해 보이는 인재근 여사님과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의 김근태 의장님...


남과 북의 어렵고 추운 이웃들에게 전달되는 따뜻한 연탄 만큼이나 따뜻한 느낌이었다.

<영정 앞의 인재근 여사님, 출처:뉴시스>

12월 30일, 우리 곁을 떠나신 김근태 의장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큰 별이 또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고문이 없는 곳.. 고문 후유증이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