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책 그리고 인생

우통수의 꿈

세미가 2007. 5. 31. 14:31

 

 

 

이광재의원님이 쓰신 <우통수의 꿈>을 읽으면 '일가를 이루겠다'는 부분이 나온다. 나는 그 부분을 읽을때 마다 많은 생각을 해본다. 일가를 이루겠다.. 일가를 이루겠다.. 이 말을 되뇌이었던 10대의 이광재 의원에게 와닿았던 말이 10대의 이광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지금의 나도 이해가 안가는데...

 

 

 

<책 내용 中에서>

 원주 중학교로 전학 온 나는 다시 독서에 열중했다. 학교 도서관에는 내가 읽어야 할 책이 많았다. 자취를 하며 외로웠지만 독서는 나를 달래주었다. 독서 삼매경에 들면서 나는 혼자인 것을 잊었다.


공부 때문에 많이 긴장하기도 했다. 원주 중학교에서 2학년 1하기 기말시험을 보았는데, 나는 반에서 30등이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평창 중학교에서 나는 못해도 1~3등을 차치했다. 밤잠 안 자고 공부에 매달렸다. 2학년 2학기에는 3등을 했다. 그 뒤에는 2등,1등으로 올라섰다.


내 인생에서 행운의 만남이 왔다. 친구 장동영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진광 고등학교 장화순 고등학교 교장 선생 아들이었다. 그를 통해 장일순 선생도 만났다. 장일순 선생은 형제다. 생명사상의 원조였던 장일순 선생은 원주에서 지학순 주교와 함께 ‘살아 있는 양심’으로 추앙 받았다.


나는 장동영의 집에 자주 놀러갔다. 그의 집은 원주시 봉산동 측백나무가 서 있는 언덕 위에 있었다. 두 채의 집이 나란히 있었는데, 하나는 장일순 선생 댁이고 다른 하나는 내 친구의집이기도 한 장화순 선생댁이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 두 집에서 발견한 장서들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서가에 꽂혀 있었다. 나는 신천지에 발을 디딘 느낌이었다.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열리고 있었다.


나는 틈이 날 때 마다 장동영의 집에 갔다. 가끔 책을 빌려다 보기도 했다. 장일순 선생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선생은 어린 나로서는 말조차 붙여보기 어려운 큰 어른이었다. 면발치 에서 보아도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김지하 시인은 장일순 선생에게 난초 치는 법을 배웠다. 첫 전시회 때의 두 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장일순 선생에게 찾아왔다.


그때마다 선생은 좋은 글을 써서 봉투에 넣어주며 그들을 위로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나는 한 인간을 대하는 풍모에 반했고, 한 인간이 인간의 정신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인간은 한순간에 변화가 오는 것을 느꼈다. 원주 생활을 통해 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치가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믿었다.

장화순 선생 댁에서 빌려다 본 책들이 그런 내 생각을 키웠다. 그 무렵에 읽은 러시아 피오르드 대제에 대한 책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변장을 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신문물을 배우고, 신기술을 가져와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든 그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또한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에 관한 책도 나에게 정치의 꿈을 심어주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공부하러 절에 들어갔다.

강원도 원성군 신림면 황둔에 있는 백련사였다. 그곳에서 틈틈이 읽은 시바 료타로의 소설 [제국의 아침]은 정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일본 메이지유신에 관한 내용이 감명 깊었다. 유능한 정치가가 한 나라를 얼마나 번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을 보면서 이 나라가 크게 한번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유주현의 대하소설 [광복 20년]도 읽었다. 그 책을 보며 사회의식에 눈떴다. 신익희 선생 대목은 내 가슴을 쳤다. 한강 백사장에서 유세를 한 뒤 기차를 타고 가던 중에 당한 의문의 죽음에 나는 분노했다. 신익희 선생은 떳떳하게 행동한 정치인이자 덕을 겸비한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돌연한 죽음이 안타까웠다. 내 마음에서 정치에 대한 꿈이 구체화되어 갔다. 그러나 정치가가 되겠다는 생각에 앞서 정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았다.


나는 원주시 봉산동에서 자취를 했다. 자취 집 옆에 기찻길이 있었다. 혼자 책을 읽다가 바람을 쐬려고 기찻길이 있었다. 혼자 책을 읽다가 바람을 쐬려고 기찻길이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곤 했다. 캄캄한 밤중에 기차가 불을 켜고 달려오는 걸 본다. 그 불빛 앞에 하루살이들이 들끓는다. 눈 깜박할 새 사라지는 하루살이들. 언덕을 내려오며 혼자 되뇐다. 그래, 하루살이처럼 살지 말아야지. 반드시 일가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1992년 여름 부산 해운대에서 지금의 아내에게 청혼을 했다. 그때 아내가 무엇이 될 것이냐고 물었다.

‘내 꿈은 일가를 이루는 것’ 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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