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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의 죄는 몇 가지나 될까요??

세미가 2009. 11. 25. 14:39

이토 히로부미의 죄는 몇 가지나 될까요??

 

이토 히로부미의 죄가 몇 가지나 될까?

사실 내 머릿속에는 손에 꼽힐 정도로 몇가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처단해야 했던 죄목은 15가지이다.

일본인 검사 앞에서 당당하게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이야기는 당당한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동양평화의 교란자 이토를 쓰러뜨리다.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쥐도적 이토를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하다.

‘저것이 필시 늙은 도적 이토일 것이다.’하고 곧 권총을 뽑아 들고, 그 오른쪽을 향해 네 발을 쏘았다.

 

이토의 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토는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그의 지휘 하에 조선의 왕비를 살해했다.

 

둘째,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이토가 군대를 동원하여 체결한 5개 조약은 한국에 대단히 불리한 조약이었다.

 

셋째, 삼 년 전 이토가 체결한 12개조의 조약은 모두 한국에 있어서 군사상 매우 불리한 내용이었다.

 

넷째, 이토는 기어이 조선의 황제를 폐위 시켰다.

 

다섯째, 한국 군대는 이토에 이해 해산되었다.

 

여섯째, 이런 조약 체결에 대해 분노한 우리 국민들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토는 이에 대해 우리의 죄 없는 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

 

일곱째, 한국의 정치 및 그 밖의 권리들을 빼앗았다.

 

 

여덟째, 한국에서 그동안 사용한 교과서는 이토의 지휘하에 모두 불태웠다.

 

아홉째, 한국국민의 신문 구독을 금지했다.

 

열째, 이토는 충당시킬 돈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국민 몰래 한국 관리들에게 돈을 주어 결국 제일은행권을 발행하고 있다.

 

열한째, 한국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갈 국채 이천삼백만 원을 모집하여, 이를 한국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관리들 사이에서 분배하거나 토지 약탈을 위해 사용했다던데, 이 또한 한국에 대단히 불리한 사건이다.

 

열두째, 이토는 동양의 평화를 교란했다. 왜냐하면 일러전쟁 당시부터 동양평화 유지라는 명복하에, 한국 황제 폐위 등 당초의 선언과는 모두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한국의 이천만 국민 모두가 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셋째, 한국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토는 한국 보호라는 명목으로 한국 정부의 일부 인사와 내통하여 한국에 불리한 정치를 하고 있다.

 

열넷째, 지금으로부터 사십이 년 전 이토는 현 일본 황제의 부군(父君)인 분을 살해했는데, 이는 한국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열다섯째, 이토는 한국국민이 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황제와 세계 각국에 한국은 별 일 없다고 속이고 있다.

 

이상의 죄목에 의해 나는 이토를 살해했다.

 

재판 과정에서 안중근 의사와 우덕순 의사의 발언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안중근 의사와 함께 일을 도모 했던 우덕순의 발언..

 

“안중근 그대가 간다면 나 우덕순도 간다.”

 

“안응칠도 나도 각각 따로 글을 썼는데, 나는 이토를 심히 가증스러운 자라고 생각하고 모욕의 뜻으로 노래를 지었다.”

 

 

 

우덕순 <의거가> 중에서

 

『만났도다 만났도다

원수 너를 만났도다

너를 한번 만나고자

일평생을 원했지만

너를 한 번 만나기가

이다지도 늦었는고

너뿐인 줄 알지 마라

너희 동포 오천만을

오늘부터 시작하여

하나둘씩 보는 대로

남의 나라 뺏는 놈들

내 손으로 죽이리라』

 

 

안중근 의사의 법정 발언..

 

“이토 공작이 있는 한 나의 조국은 영구히 멸망할 것이오.…모든 불행은 이토 공작 때문이고, 이토 공작의 음모요, 이토 공작의 책략이요. 이토 공작의 야심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불화를 가져온 사람도 이토요, 일본인들에 대한 봉기의 원인도 이토요, 한국이 일본 천왕에게 보낸 국서를 중간에서 가로챈 사람도 이토이다.”

 

 

“대한독립은 내 삶의 목적이요, 평생의 사명이다.”

 

 

“나 안중근을 국제법에 의해 포로로 대우하라.”

 

“나는 삼 년 전부터 나라를 위해 생각하고 있던 일을 샐행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의군 참모 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을 하여 이토를 죽였고 또 참모 중장으로서 계획한 것인데, 지금 이 여순 법원 재판정에서 심문을 받는 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나는 죽어서도 마땅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울 것이다.”

 

 

 

한 영국 신문기자의 안중근 공판 참관기의 기사가 부록으로 있었다.

 

제목은 <그는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늠름하게 법정을 떠났다.>라는 제목이었다.

 

예상대로 안중근에게는 사형이 언도되었다.

 

안중근은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재판을 받는 동안 법정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열변을 토하면서 두려워한 것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혹시라도 이 법정이 오히려 자기를 무죄방면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이었다. 그는 이미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준비 정도가 아니고 기꺼이, 아니 열렬히, 자신의 귀중한 삶을 포기하고 싶어했다. 그는 마침내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늠름하게 법정을 떠났다. 일본 정부가 그처럼 공들여 완벽하게 진행하고 현명하게 처리한, 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본식의 한 ‘유명한 재판 사건'은 결국 암살자 안중근과 그를 따라 범행에 잘못 인도된 애국동지들의 승리로 끝난 것이 아닐까.

 

재판 기록을 보면서, 안중근 의사의 당당함을 엿 볼수 있었다. 이 기자의 표현대로 아마도 순교자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시는 듯 했다.

 

마침내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늠름하게 법정을 떠났다는 표현을 보면서 뤼순 법정을 떠나는 안중근 의사를 상상해 본다.

 

의거 직후부터 순국하기까지 조금의 흔들림 없이 법정 투쟁을 벌여 나갔으며 다섯 달 동안의 투쟁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를 놀라게 한 ‘안중근의 전쟁’이었고 의연하게 최후를 맞이한 안중근 의사...

   

지금 안중근 의사와 같은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우리가 이어가야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를 새롭게 다시 보고 내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열화당, 이기웅> 책을 읽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