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결혼식에 신부 들러리를 서고 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기숙사 룸메이트는 중국인이었습니다.
중국인 조선족이었던 언니가 한국에 대학원 유학을 왔을 때 2년 동안 함께 생활을 했었습니다. 대학원 내내 언니를 통해 기숙사 중국 유학생 언니 오빠들하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가끔은 저도 중국 유학생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유학온 언니의 친오빠랑도 친하게 지냈니다. 언니는 졸업 후 중국으로 떠났고 가끔 출장 차 한국에 들어와서 졸업 후에도 가끔 얼굴을 보기도 하고 msn을 통해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친 언니처럼 친하게 지냈던 언니의 결혼식이 지난 1월 2일이었습니다.
다행히 연휴 중에 결혼식을 치룬다는 이야기에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중국 상해여서 길림 장춘 보다는 더 편할 것 같았습니다.
중국에서의 결혼식은 어떻게 올릴까 궁금했습니다.
신부 들러리를 서기로 한 저는 결혼식 당일날 아침 7시까지 언니가 묵었던 아파트(민박)에 갔습니다. 신부 화장 중이었습니다. 본래 신부 화장할 때부터 비디오 촬영을 하기 때문에 신부 들러리는 일찍 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화장을 하고 있는 동안에 언니 사촌 동생들은 여기저기에 붉은 福자를 붙이고 차를 꾸미느라 분주합니다. 준비가 다 끝나고 난 후, 신랑이 신부를 데릴러 온다고 합니다.
그 전에 아파트가 무너질 듯 한 폭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봤더니 폭죽이 터지는 소리입니다. 아마도 중국은 결혼식 전에 폭죽을 터트리나 봅니다. 폭죽을 얼마나 터트렸는지 아파트 앞이 붉은 폭죽 터진 가루가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만나려면 두 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현관문을 친척 분들이 지키고 서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함이 들어 올 때 돈을 주면서 함을 들어오게 하는데 중국은 신랑이 돈을 주며 노래를 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해야 합니다.
저는 신부 들러리라서 신부와 함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틈으로 보니 현관문을 들어선 신랑은 거실에서 열심히 풋샾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신부가 있는 방문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었나 봅니다. 그 다음 방을 향해 사랑고백을 합니다. 중국어로 이야기 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영원히 사랑한다. 이런 이야기를 시처럼 말하는 듯 했습니다. 어느 타이임에 문을 열어줘야 할지 몰랐습니다. 돈도 받고 여러 가지 시켜야 한다는데 우선 말이 안 통하니 언니한테 문 열어줄 타이밍을 이야기 해달라고 했는데 신부인 언니는 두 세 번 사랑 고백을 듣고 나더니 그냥 문을 열어 달라고 했습니다.
문을 열으니, 신랑이 꽃다발을 들고 들어옵니다. 무릎을 꿇고 사랑 고백을 하며 꽃다발을 신부에게 줍니다. 신부가 꽃다발을 받고 결혼 반지를 다시 손에 끼워줍니다. 행복하게 뽀뽀를 합니다. 이렇게 결혼 승낙을 얻어낸 신랑과 신부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키워주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족 모두가 예식장으로 향하려 집을 나섭니다.
신랑은 신부를 업고 아파트 아래까지 내려와 차에 태워줍니다. 가족들은 예식을 치룰 식당으로 가고 신랑신부와 들러리인 저는 근처 생태공원에 가서 사진을 몇 장 더 찍습니다. 웨딩포토를 찍었지만 비디오 카메라를 찍기 위해서 갔습니다.
사진을 여기저기에서 찍었습니다. 다행이도 날씨가 춥지 않아 신부가 드레스를 입고서도 추위를 많이 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생태호수공원에서 촬영을 마치고 다시 결혼식을 치루는 식당으로 향합니다. 식당에 도착하지 수 많은 폭죽이 터집니다. 신랑신부가 탄 차 앞 자리에 탄 저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눈 앞에서 너무 많은 폭죽이 큰 소리로 터지니 무섭기도 하고 먼저 차에서 내렸습니다. 폭죽이 다 터진 후에 언니의 어린 조카들이 장미 꽃을 뿌려주며 신랑 신부가 입장을 합니다.
하객들이 모여 앉아 있는 식당 중앙에는 결혼식 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음식들과 과자들로 장식된 상입니다. 한국의 폐백 상차림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신랑 신부가 입장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신랑의 각오를 듣고 신랑 신부의 부모님들의 감사 말씀도 듣습니다. 중국 결혼식에서의 특이한 점은 결혼 증서를 발급하는 것입니다. 언니네 이모부께서 대표로 일어나서 신랑 신부에게 여권처럼 생긴 붉은 결혼증을 교부해 줍니다. 결혼증에는 신랑신부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은 결혼증을 교부해 주나 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중국은 결혼 할 때는 결혼증을 교부해 주고 이혼을 하면 이혼증을 교부한다고 합니다.
결혼증을 받고 나니 정식 결혼식은 거의 끝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에 신부 들러리 소개가 있었습니다. 한국처럼 꽃을 던지지는 않고 사회자 분께서 앞으로 결혼하실 분 나오세요.. 라고 하면 여러 사람이 나와서 부케 받는 것을 경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은데, 들러리가 저로 정해져서 나가서 부케를 받고 한국에서 온 동생이라고 언니가 소개 시켰습니다. 한국에서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갔다고 해서 인지 많은 분들이 박수도 쳐주었습니다.
축하의 한마디를 해 달라는 사회자의 주문에 순간 당황스러워서 정신없이 했던 축하 말이 대략
“저는 언니가 한국에서 유학할 때 함께 기숙사 방을 썼던 룸메이트입니다. 오늘 언니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와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언니가 살아가는 동안 늘 오늘처럼 행복하고 많은 사랑을 받길 희망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만났던 날 중에 가장 행복해 보이는 언니의 모습을 보면서 늘 오늘처럼 행복하다면 정말 최고로 행복해 하며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결혼 끝난 후 언니 아버님 친구 몇 분이 제게 와서 너무 고맙다고 감동했다는 이야길 하셨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결혼식을 보러 왔다는 이야기가 참 크게 와 닿았나 봅니다.
1부 결혼식이 끝나고 웨딩드레스에서 한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언니 한복 입는 것을 도와주고 옷고름도 예쁘게 매주었습니다.
한복으로 갈아입고 온 후 2부 결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2부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사진도 찍고 신부와 신랑 들러리가 나와서 신랑 신부에서 술을 주는 시간이 있었고 특이한 것은 신부 들러리가 신랑 신부에게 계란밥을 줍니다. 삶은 계란이 들어 있는 밥을 주면 신랑이 계란을 찾으면 아들, 신부가 계란을 찾으면 딸이랍니다. 신랑이 계란을 찾아서 아들일 것 같습니다. 신부가 계란을 찾아도 신랑이 그 계란을 한꺼번에 다 먹으면 아들이랍니다. 그 다음은 바가지에 대추와 사탕을 넣고 던져서 엎어지면 아들이고 그대로이면 딸입니다. 이번에도 아들입니다. 대부분의 행사가 아들을 낳기 위한 의식인 듯 했습니다. 어제 뉴스에 한국에 남아선호 사상이 거의 사라졌다고 나왔는데 아마도 중국은 지금까지도 남아선호사상이 조금 더 있나 봅니다.
신부 들러리로서 해야 하는 마지막 일은 결혼식 상에서 신랑 신부가 첫날 밤 먹어야할 음식을 큰 함지박에 담는 일입니다. 과자와 순대, 과일들을 차곡차곡 담아 예쁘게 싸서 신랑 신부 방에 넣어 준다고 합니다. 결혼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신랑 신부 가족들과 친구들의 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각 테이블 별로 신랑 신부가 돌면서 인사를 나누고 술을 권합니다. 조금 더 있으니 한국 노래 아리랑과 북한 노래들이 흘러나오면서 한국의 칠순 잔치처럼 어르신들의 어깨춤이 나오면서 잔치 집이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춤을 추고 놀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유흥의 시간이 지나고 결혼식 순서가 다 끝났습니다. 2번째로는 노래방에 갔습니다. 친척들과 가족들 한 방, 친구들과 젊은 층 한 방 해서 두 개의 방에서 2-3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고 놀았습니다. 한국 노래, 북한 노래, 중국 노래, 팝송까지 다양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한국에서 온 들러리라고 계속 술을 주는 바람에 계속 술을 마셔야 했습니다.^^;
노래방이 끝나자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백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돌렸습니다. 한국의 술.. 신랑 신부의 들러리가 들러리로서 중국 친구들에게 한국 폭탄주의 맛을 확실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신부도 신랑도 친구들도 모두 즐겁게 식사를 하며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했습니다.
아주 긴 하루가 끝나면서 신랑 신부의 결혼식도 끝났습니다.
중국 조선족인 언니의 결혼식은 아주 간소하게 한 편이라고 했지만 한국 보다 훨씬 복잡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신랑 신부를 보면서 저도 행복했습니다.
돌고 돌아 인연을 만났다는 언니..
지금처럼 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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