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책 그리고 인생

[문재인의 운명] 남긴 숙제를 하셔야 합니다. 운명이니까요..

세미가 2011. 7. 6. 17:49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 그리고 운명..


2000년 노무현 당시 부산시장 낙선자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분을 알게 되었고 그 분의 팬이 되었다. 경선과 대선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하는 지지자였다.


2004년 총선,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께서 뜻을 펼칠수 있도록 다수 의석을 갖게 해 드리자. 24세부터 노무현 의원을 모셨던 분의 선거를 돕고 그 분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분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 분이 떠나신 후, 많은 책들을 통해 조금씩 더 그 분을 알아간다.


2011년 문재인실장님의 운명을 통해 또 한번의 노무현 대통령을 알게 되었다.


문재인 실장님과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과 운명...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11년의 나의 기억과 그분이 살아왔던 시간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러 책들을 통해, 퍼즐들을 맞추어 가듯이 의문이던 일들이 정리되어 갔었는데 문재인 실장님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이 말끔히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 첫 부분은 이별이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 2009년 5월 23일 아침으로 시작된다.


책을 읽으면서 그날을 회상했다. 토요일 아침 갑자기 울린 전화벨소리.. 뉴스 속보.. 하해지는 머리와 정신 없이 봉하마을로 가던 길.. 그 시간 봉하마을에서는 진영병원에서 부산대 병원까지 슬픔 속에서 중심을 잡았어야만 했던 비서실장으로서의 모습과 그날 내가 느낀 하루의 일과가 영화의 필름처럼 교차 되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눈물을 쏙 빼놓는다.


변호사 생활 시작과 함께 만난 노무현과 문재인.. 두 사람은 참 열심히도 살았던 것 같다. 인권 변호사를 하면서 학생들과 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고소도 당하고 구금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다 노무현 변호사는 정치인의 길을 걸었고 문재인 변호사는 쪽 변호사로 살아왔다.

 

문재인 비서실장의 삶을 처음으로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멋진 분이다. 운동권 학생에서 공수부대 특전사, 그리고 인권변호사에서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그 분의 삶이 또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부산시장, 국회의원 출마를 할 때면 묵묵히 도와주는 친구이자 동지였던 문재인 실장과 노무현 대통령은 운명으로 묶인 사이였다.


책을 읽으면서 영화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2000년 3월 16일 광주 경선... 노무현 민주당 경선 후보가 최초로 1등을 했던 곳이다. 노풍이 시작되었던 그 순간.. 광주에서는 축제였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의 기쁨은 대통령 당선 때 보다도 기뻤던 것 같다.


2002년 12월 19일.. 전날 정몽준 의원의 단일화 철회, 부산에서 아는 분들이 새벽에 울면서 전화했다. 미안하다고..미안하다고.. 그분들이 미안해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들은 미안해 했었고 12월 19일 아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기로 했다. 투표 했느냐 확인하고 독려하고 또 독려했다. 오후 2시, 출구 조사가 뒤짚인 것 같다고 조금더 독려 전화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기적과 같은 대통령 당선! 200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과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식을 지켜봤다.


2004년 3월 12일, 탄핵 소추안을 냈다고는 하지만 설마 설마 했다. 순진하게도 투표를 하더라도 부결 될거라 믿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끌려 나갔고 한 표 차이라도 부결되겠지..했지만 결국은 통과되었다. 그 순간, 평창 진부에 있었다. 2004년 지방선거 자원 봉사를 위해 강원도에 갔었다. 진부에 아저씨들과 탄핵 가결되는 순간을 봤었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옆에 계셨던 분이 왜 우냐고 물었다. 그분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낯선 강원도 평창 진부에서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2007년 10월 4일, 남북 정상 회담.. 노란 선을 넘어 정상회담 가는 길.. 그날 파주 출판단지를 다녀오다가 티비를 통해서 그 장면을 봤다. 아주 인상적인 그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 이라크 파병과 대연정, 한미 FTA, 검사와의 대화, 공수처와 국가보안법, 과거사정리까지 참여 정부의 굵직한 일들에 대한 뒷 이야기까지 알 수 있었다. 궁금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되기도 했다.


그리고 퇴임식..


그날은 서울 역에서 대통령께서 봉하마을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노란 풍선이 가득했던 서울역에서 여의도로 돌아오자 여의도는 파란 목도리로 가득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2008년 여름, 봉하마을..

저수지 앞 공터에서 대통령을 기다리는 사람들.. 어떤 모습으로 등장을 하실까? 궁금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등장했다. 역시 노무현 대통령이셨다. 봉하마을 복분자 밭에서 복분자를 직접 따시는 모습을 보았고, 30분 시간을 할애해 주시기로 했지만 우리 일행들에게 1시간 30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고 사진을 다 찍어주셨던 대통령님.. 사저 앞에서는 대통령을 기다리는 국민들.. 참 평화로웠던 봉하마을 정경이었다.


그 시기의 대통령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면..


"하루 종일 저희 집 대문 앞에서 저를 나오라고 소리를 치십니다. 한번 씩 현관에 나가서 손을 흔들어 봅니다만, 그분들도 저도 감질나고 아쉽기만 합니다"며 악수도 하고 사진도 찍어보고 노래를 하신적도 있었던 것 같다. 추모 사진전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해 보였다.


가끔은  봉하 마을에서 구경할 만한 명소들을 소개하며 봉하 지킴이를 자처하시기도 했다. 봉하 오리쌀과 장군차를 심고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니며 산책도 하고, 동네 슈퍼에서 담배도 피우고, 화포천을 정비하며 살고 싶으셨던 국민 속의 대통령님..너무나 행복해 보였던 그 생활..


형님에 대한 검찰수사가 시작되면서, 대통령의 글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집 앞 관광객들과의 만남도 사라졌다. 봉하 마을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감옥 아닌 감옥에 갇히시게 된 것이다.


2009년 4월 7일 검찰의 박연차 회장 수사가 대통령 일가를 직접 겨냥해 오던 중 "사과드립니다"란 글을 올렸다.


"저의 집에서 돈을 받았다"며 "송구스럽기 짝이 없고, 지금껏 저를 신뢰하고 지지를 표해주신 분들께는 더욱 면목이 없다" 그 후 몇 개의 글들과 함께,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란 글을 남겼다.


4월 22일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긴 글은 2009년 5월 23일 유서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이렇게 마지막 글을 남기고 떠나셨고 봉하마을을 찾은 수 많은 국민들과 전국 곳곳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500만명 국민들이 참배를 했다. 따가운 태양 아래에서도 쏟아지는 빗방울 아래에서도 수백미터의 참배 줄을 이탈하지 않고 수시간씩 기다렸던 그 국민분들과 함께 슬픔을 이겨냈다.

 


남은 자들은 봉하 마을에 작은 비석을 놓는 묘지를 만들었다.

수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박석으로 바닥 돌을 하나씩 하나씩 놓았다. “잊지 않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내 마음 속의 영원한 대통령”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묘역은 완성되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비서실장 문재인이 함께 했다.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온 것 같다.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내 삶도 그런 것 같다.



이제 우리는 살아 남은 자들의 책무, 그가 남기고 간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노무현 시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충격 비통 연민 추억 같은 감정을 가슴 한 구석에 소중히 묻어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길이다.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남긴 숙제에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비서실장 문재인!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루고자 했던 정신을 이어가 주시길 바란다.


바로 ‘운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