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희망이야기

1000번째 수요 집회 - 죄송합니다.

세미가 2011. 12. 14. 17:14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과의 첫 만남은 2007년 4월이었습니다. 참살이라는 단체와 함께 나눔의 집 할머님들과 함께 영월 여행을 하는데 여행 동호회에 봉사를 요청 했었습니다. 할머님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할머님들 말벗도 되어드리고 부축도 해드리며 많은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할머님들과 청령포 앞 식당에서 올갱이 해장국으로 점심을 먹고 단종제 구경을 했습니다. 왕비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시기도 하고 오랜 고택에서 쉬기도 하고 영월에서 나오는 전병과 막걸리도 마시고 섶다리를 건너기도 했습니다.


여러 행사를 함께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할머니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해주시고 했습니다. 고향 이야기와 어떻게 끌려가게 되었는지.. 하루 종일 할머니와 함께 하면서 꼭 수요 집회에 가야지..가야지..했지만 근무 시간이라는 핑계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덧 1000번째 수요 집회를 한다고 합니다. 1000번의 수요 집회를 하는 동안 한번도 함께 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어제 퇴근 시간 김요지 할머니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아는 비서관님이 장례식장 갔는데 너무나 장례식장이 쓸쓸하다는 소식에 송년회 약속을 취소하고 급하게 택시를 타고 영등포 신화 장례식장에 갔습니다. 가족을 제외한 네티즌 한 팀만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할머님 영전에 국화꽃 한송이를 놓아드리고 할머님 동생 분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올케 분께 일반 시민인데 기사를 보고 왔다고 설명을 하면서 음식 서빙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함께간 지은씨와 문상 오는 분들께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대부분 네티즌들이었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홀로 오신 분들이나 친구분과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네티즌 분들끼리 처음 본 사람들이지만 함께 식사를 하고 술자리를 갖기도 했습니다. 문상객보다 조화가 더 많은 장례식장이었습니다.

 


장관님들과 많은 국회의원님들 조화보다도 더 오랫동안 기억되는 조화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쓴 일반 시민이라는 분의 조화를 보면서 그만 눈물이 났습니다. 가장 진심이 느껴지는 조화였습니다.

 

 


늦은 밤까지 장례식장에 있으면서 김요지 할머님의 삶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님의 형제는 아래 동생 한 분이라고 합니다. 남매는 아주 우애가 좋았고 평생 함께 살아왔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평생 동생 뒷바라지를 했고 할아버지에게는 아들 세 명과 딸 한 명이었는데 네 명의 조카와 조카 며느리까지 모두 고모님을 사랑하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늘 아이처럼 밝고 장난기가 많으신 할머님의 아픔을 알게 된 것도 몇 년 안 되었다고 합니다. 나누는 것을 좋아해 늘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고 살아왔던 할머니...할머니의 사연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던 막내 조카 분은 왜 우리 고모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지..몰랐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큰 조카분께서는 우리 고모가 참 쓸쓸하게 가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 쓸쓸하지도 외롭지도 않게 떠나실 수 있길 바랍니다.


김요지 할머니께서 떠나셨으니 이제 264분의 할머님 중에 63분만 남으셨습니다. 80세가 훌쩍 다 넘기신 할머님들에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빨리 일본 정부는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합니다.


 1992년부터 시작된 수요 집회가 19년 11개월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 점심, 수요집회가 1000번째 되는 날입니다. 아직까지도 해결된 것은 없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부터 젊은 직장인, 주부들 그리고 어르신들까지.... 그리고 외국인들까지 일본 대사관 앞을 가득 채웠습니다. 늘 30명 내외의 분들이 수요 집회를 했는데 1000번째라는 의미를 가지고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신 것 같았습니다.


오늘 집회 사회는 권해효님이었고 한명숙 총리님과 이정희 의원님이 참석했습니다. 성악가 한 분이 나오셔서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그 아리랑 노래를 들으니 할머님들의 살아온 한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 같아..가슴이 아팠습니다.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수능 끝난 여고생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워, 조국은 하나다..노래를 열창하는 노래패의 공연도 있었습니다.


<평화비, 출처:머니투데이>           < 뻔뻔한 일본, 일본 대사관>

평화의 비 제막식이 있었는데 일본 대사관에서 막아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 뻔뻔하고 뻔뻔한 나라입니다. 단발 머리의 10대의 소녀 모습의 평화비는 70년 전의 어린 소녀였을 할머님들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네티즌들이 모금하여 승합차를 전달하는 행사도 있었습니다.


할머님들이 홀로 싸워오신 1000번째 수요 집회를 시작으로 많은 분들의 관심을 시작으로 빠른 시일 내에 할머님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70년 전의 모습을 담은 평화비, 출처:서울경제>

첫 수요 집회를 한지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평균 연령이 86세인 할머님들에게 시간이 정말 많지가 않습니다.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위해 모두가 함께 해야 합니다.


63분의 할머님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시길 기원합니다.